12월 25일, 26일 전라남도 구례에 다녀왔다.
맛있는 남도의 밥상을 기억하고자 블로깅한다.
보기엔 화려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맛만큼은 화려하고 세련됐다.
거기다 넉넉한 밥상 인심까지 보태지면 먹는 입은 그저 행복하다.
12월 25일 길동무의 회사 동료 부모님께서 하시는 식당에 들러 공짜 식탁을 받았다.
낯선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신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식당 이름은 '강남 가든'이다.
전남 구례에 어인 강남?하는 생각이 서울사는 나에게 잠시 스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협할 생각일 뿐.
그곳엔 섬진강이 굽이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섬진강의 남쪽이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강의 남쪽일지도
자기 생각에 갇히지 말 것!!
자리를 잡고 앉자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 되짚어 보니 마치 넓게 생각하고 넓게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줬던 것 같다.
멋진 선을 만들어 내는 산, 약한 햇볕에도 선명하게 빛나는 저수지, 그리고 가끔씩 날리는 눈발...
먹을 거리로 배를 채우기 전 이미 도시의 분주함과 다른 낯선 곳의 여유로움이 마음 한 가득.
그리고 상을 가득 채워주는 반찬들...풍성하고 넉넉했다.
얇게 찢어 간장에 조려만 먹던 우엉을 마치 더덕무침처럼 조리한 우엉반찬이 새로웠다.
우엉의 재발견이랄까....고추장과 어울린 우엉...음..맛깔스러웠다.
기차 시간도 애매했고, 또 이 강남가든에 가기 위해서 점심이 늦어진 터라 밥이 참 고와 보였다.
내 배 속에 넣기 전 이 밥을 기록으로 남겨둬야 했다.
일본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에서 주인공이 '남부의 쌀'이라는 대사를 하며 무엇인가 하는 장면이 있다.
뭘 했는지 남부의 쌀이라는 대사 전후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배우가 '남부의 쌀'을 내뱉는 어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밥을 마주하자 내 머리 속에 그 배우의 그 대사 '남부의 쌀'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부의 밥...맛있었다.
이날의 주인공은 버섯전골이었다.
국간장으로 간을 한 듯, 그리고 약간의 고깃덩어리가 보이고 팽이, 송이, 표고, 목이버섯이 풍성했던 버섯전골.
사실 목이버섯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다양한 버섯이 담겨 있었다.
국물맛 깔끔했고 버섯도 서울에서 먹는 것과는 질감도 맛도 향도 달랐다.
한번더 먹고 싶었으나 돈을 받지 않으시는 터라 갈 수 없음이 아쉬웠다.
초토화되어가는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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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날 아침엔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오우~ 서울에서 먹던 조미료에 쩐 순두부가 아니었다.
텁텁한 조미료 국물과는 감히 견줄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뒷맛, 순두부 찌개 맛은 바로 그래야만 한다.
게걸스럽게 쳐묵쳐묵하느라 이미지 없다.
그리고 26일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굴국밥
가끔 엄마가 매생이만 잔뜩 넣고 국을 끓여 주셨다. 그러나 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생이가 그리 향긋할 줄이야..
굴국밥도 그다지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닥 좋아하거나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동무들과 메뉴도 통일할 겸 굴국밥을 선택했다.
서울에서 굴국밥을 먹을 때마다 이거 뭐 잡탕도 아니고 이런 생각하면서 먹었더랬다.
하지만 밥과 국을 따로 주는 것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매생이 향기에 훅~가버려 맛나게 굴국밥 쳐묵쳐묵
매생이, 부추, 바지락, 굴, 두부, 수제비가 빚어내는 훌륭한 조화
굴국밥으로 짧은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