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버섯꽃 2011. 8. 27. 18:26




최종병기 活


극장에서 보길 잘 했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기엔 아까운 영화라 생각한다. 누구는 CG가 거슬렸고 누구는 전투신이 거슬렸고 또 누군 저것이 이것이 거슬렸다는 무성한 인터넷상의 거슬림의 이야기들을 보았지만 난 이 영화가 무척 맘에 든다.

시작부터 긴박했거니와 저 아이들은 누규? 저 얘들이 남이와 자인인가? 등의 나름 짱구를 굴리며 화면을 향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셨다. 두려움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날아든 한발의 활, 이어서 아들을 다그치는 아버지의 말이 너무나 강렬했다. '정신차려라, 두려우냐? 두려우면 그 두려움을 직시해라' 역적이 되어 자식들 눈 앞에서 죽어나가신 아버지가 위기 상황에서 아들에게 던진 말은 영화 말미에 그 아들과 딸이 마주한 위기 앞에서 한 마디 더 부연되어 아들의 입에서 등장하신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정신차려라, 두려우나? 두려우면 그 두려움을 직시해라' 난 시작부터 이 말에 압도당해버렸다. 사람은 무엇이든 극히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라 믿는다. 그래서 남이와 자인의 아버지의 말이 마치 두려움에 관통당한 내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난 두려움을 직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 이 생각에 몰두하게 되었다. 두려움을 전해주는 상황과 두려움이 몰고 온 바람은 두려움을 직시할 수 있으면 극복할 방법이 보일 것이다.

냉소적인듯 자포자기한 듯한 남이가 끝까지 놓치 않은 것은 활이었다. '태산처럼 받들고 호랑이의 꼬리처럼 말아 쏴라', 처음에 남이가 활 연습을 할 때 시선이 활이 날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날아오는 활을 바라보는 시선인데다 활이 과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비켜나갔다, 아니 이건 무엇? 그건 바로 곡사

이 영화의 백미는 쥬신타가 남이를 쫓을 때의 긴장감이 아닐까 생각된다. 팽팽하게 당긴 활 시위 같은 긴장감은 배우들의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서부터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동안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전해졌다. 


혼례를 치루고, 마당에서 절구질을 하고, 담배를 채워넣고, 물을 긷던 일상은 일시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후금의 급습이 이루어진 마을에서 사람들은 눈 앞에 벌어진 광경에 그저 눈만 껌벅이다 자기 목으로 날아온 밧줄에 매달려 말에 질질 끌려가며 온 정신이 혼미해진다. 삶의 불확실성이 사람들을 안정에 목매이게 하지만 후금의 급습같은 일순간의 사건들은 안정된 삶에 대한 욕구를 처절하게 짓밟아 버린다. 신분과 성별, 노소를 구별치 않고 후금 병사들에게 목에 줄이 매어 마치 짐승처럼 끌려가는 조선 백성들의 모습은 민족과 역사의 아픔보다는 안정된 삶을 갈구에 대한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사실 이 영화는 병자호란이 배경이지만 그 안에 살아 숨쉬던 개인의 이야기다. 쥬신타 역시 그저 조카의 죽음으로 피가 끓어오른 삼촌이라는 개인으로 보일 뿐이다. 
병자호란 후 끌려갔던 조선 백성들에 대한 조선왕실의 대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기 하지만 이 영화는 역사를 논하는 이야기가 아닌 광고 대로 '활 액션'이라 생각한다. 다만 그 '활 액션' 속에 담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뿐.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뒷수습에 조선왕조는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득권층들은 조선 땅만 뒷수습하여 거기서 자기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면 그만이었지 않았을까, 끌려간 사람들 중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남아있는 기득권층에게는 없어주면 좋은 라이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현의 노래에서 우륵이 말했듯 소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소리이듯이 활도 살아있는 동안에만 '활'? 최종병기 活이라는 제목은 같이 영화를 본 동행인이 말해 줘서 알게 되었다. 왜 活? 그 분은 남이가 후금의 왕자 일행을 추격하고, 쥬신타의 추격에서 도망하는 동인과 쥬신타가 남이를 끝까지 추격하는 동인 자신의 삶 속에 있는 동생과 조카의 가치때문이기에 활이 活이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活에는 살다, 생존하다, 살리다, 소생시키다 라는 뜻이 있다. 남이가 자기 활은 죽이는 활이 아니라는 말을 한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쏜 활은 그 사람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자들을 죽이지만 그로 인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목숨을 보전한다. 남이의 활은 타인의 목숨을 뺏기 위한 목적을 우선시하여서는 활이 시위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자인이가 활을 쏘는 것 역시 그 목적에서 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인의 활은 아무도 해하지 않았다. 오빠를 위해 시위를 떠난 적이 있을 뿐이었다. 남이와 자인의 활은 지켜서 살리고 소생시키는 弓이었다. 

서군이 때문에 두 어번 웃었다. 서군이와 후금의 군사가 싸울 때 다리가 짧아 슬픈 후금의 군사때문에 한 번 웃고, 다시 만난 자인에게 '부인'하고 외칠 때 또 한번 살짝 웃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쥬신타, 자인, 남이가 대치하고 있을때 서군은 뭐하고 있었을까? 상처 지혈하면서 삼인 구경? 이 영화에서 서군이 무열이의 존재감은 후금의 왕자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남이와 쥬신타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해
서 그랬을까? 그런데 쥬신타의 부하들 중의 한 명이 눈에 박힌다, 이자는?....오타니 료헤이 만주어를 익힐 틈이 없었나? 수화를 한다.
간사이 공항에서 오타니 료헤이를 발견하고 무조건 쫓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냥 단지 졸졸 따라가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만 감상했었다. 다들 싸인이라도 받지 그냥 왔냐며 타박했던 그 오타니 료헤이였던 것이다. 영화볼땐 생각이 나질 않아서 출연진 찾아보고서 그가 그인줄 알았다...
나에게 있어 서군이 무열이의 존재감은 ost 달 그림자를 부른 것으로 조금 무게가 생겼다. 평범하여 오히려 정감가는 목소리지 않나 하는 감상. 그의 뮤지컬을 한 번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적절한 긴장감을 갖고 만족스럽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남이가 후금 얘들이 쏜 화살을 다 피해다닌다고 역시 진부하다고 말하시는 분들, 본 시리즈도 그렇고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총이든 화살이든 모두들 다 잘 피해다니신다고요, 주인공이 첨부터 총 맞고, 칼 맞고, 화살 맞아 힘 못쓰면 영화가 재미있겠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