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재, 위안부에 대한 일본 사회의 움직임은 씁쓸하기 그지 없다. 위안소, 위안부라는 발상을 했다는 자체가 역겹기 그지없고, 위안부 여성들이 그때부터 평생 겪어야 했을 고통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 원래 매춘부였다고 매도하는 일본인들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위안부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설사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웹사이트를 찾아보면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대로 원래 매춘부로 전쟁터에 돈벌러 간 사람들이고, 조선인 브로커가 군대에 넘겼다는 등의 정보를 발견할 뿐인듯하다.

 

아사히 신문에 소를 제기한 사람들이 대부분 식자층이라는 사실에 일본의 지성에 대한 회의를 갖기에 충분한 것 같다. 일본 미디어에서 보이는 휴머니즘의 대상은 일본인일뿐이요, 국적, 피부색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것은 결코 아닌가 보다.

 

일본의 우익들이 위안부의 진실을 바꾸기 위해 후위에서 활발히 움직인다고 한다. 일본 우익처럼 그녀들의 아픈 역사를 지키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지 의문이다.

 

 

대학교수, 변호사, 교사, 언론인 등 8700명 이상이 아사히 신문이 보도한 위안부 이야기에 대해 정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아사히 신문을 소송을 제기했다.

 

소피아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이치 와타나베가 이끌고 있는 원고측은 상징적인 보상으로 각각 10000옌을 요구하고 있다. 소장에 따르면 원고측은 자신들을 아사히 신문의 잘못된 보도로 명예와 진실성에 상처입은 일본 국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보도는 전 군인들과 일본 시민에게 강간자 깡패들을 만들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욕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발행된 위안부 이야기로 아사히 신문은 일본 보수의 비난 포탄을 맞아왔고 공격 위협을 받아왔다. 학계와 산업계의 전문가 위원단은 아사히 신문이 다룬 이슈는 독자들의 신뢰를 배신하였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2014년 8월 아사히 신문이 한발 물러섰다. 아베 신조 수상은 아사히 신문의 잘못된 기사가 외국인이 갖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흐린다고 말했왔다.

 

공식적인 기록이 부족하지만 주류 역사가들은 위안소라 불리는 군대 매춘굴에서 일본인 병사들을 받았던 여자들은 20만명에 달할 것이라 한다. 위안부들은 대부분 한국여성이었고,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여성들도 있었다. 대부분 이들 여성들은 자기 의지대로 온 것이 아니며 제국주의 일본군대와 전시 정부가 노예처럼 만들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익은 위안부 여성들은 상업적인 거래를 한 일반 매춘부들이라고 하며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 후위전을 활기차게 진행하고 있다.

 

전후에 지속적으로 아사히 신문은 사회주의적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었고, 반일, 자기 비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소장은 주장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소장 검토 후에 반응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출처

More than 8,700 people sue Asahi Shimbun over 'comfort women'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