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가 끝났다, 마지막회를 하던 날 같은 시간 KBS1에선 역사스페셜이 공주의 남자를 기초로 계유정난에 대한 방송을 했다,

우선 공주의 남자 1회부터 24회까지 본방사수를 하며 지켜보았던 시청자로서 감상을 말한다면 '아?'이다.

22회 상처키스신을 보며 아무래도 해피엔딩으로 끝이 날 확률이 높다라고 생각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준 해피엔딩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눈먼 승유, 혹자는 운에게 철퇴를 맞아 장님이 되었다하지만 승유가 복수와 대업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이면서 드라마를 상처없는 온전한 해피엔딩을 만들기엔 아쉬움이 있어서일 것 같기도 하다. 여튼 눈먼 승유는 불만스럽다.

여기서 운에 대한 생각, 승유에게 철퇴를 가하기 전 승유의 아버지와 형에게 철퇴를 가했고, 승유를 죽은 시체인양 세령이와 함께 옥에서 수레에 실어 내보낸 이도 운이다. 운! 넌 모냐? 그냥 수양의 뜻대로 혹은 윤씨부인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그런 자...징한 충성이다.

그리고 여리는 왜 마지막회에서 머리를 올리고 있는 것인데? 승유의 세컨드? 왜 쪽지었어? 결혼했어? 아강이와 형수는 어디로 간 것이야? 승유와 함께 하게 되어 기쁜 세령과 눈먼 승유는 목숨을 건 신의를 보여주었던 조석주와 틱틱거리면서도 자신을 살펴준 빙옥관 사람들에게 조차 자신들이 죽은 것으로 믿게 했듯이 아강이와 형수에게도 그리했을까?

주인공 세령과 승유를 힘들게 했지만 신면에게 있어 둘도 없던 존재였던 자번이, 경혜공주 곁을 끝까지 지키는 은금이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다. 부도 명예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최선의 지지자요 조력자들로 없어서는 안될 이들이었다, 이들 같은 사람을 얻는다면 마음 든든할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은 신면이지 싶다. 벗들의 배신자여야 했고, 사랑하는 여인에겐 외면 당해야 했고, 늘 곁을 지켜주었던 자번일 잃어야 했고, 극한 갈등을 겪으며 힘을 보탰던 이에게 죽음 당해야 했다, 
면이 숨이 끊어지기 전 떠올렸던 승유와 기억을 보면 승유를 죽이겠다며 이를 갈고 다녔지만 면에게도 종이와 승유는 늘 마음에 품었던 좋은 벗이였던 것이다, 미수를 보며 미소지으며 이름을 물었을 때 더러운 입에 아이 이름을 말하게 할 수 없다던 경혜의 말이나 신판관의 입에서 그 분의 함자가 나오는 것이 싫다던 세령의 말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신면이 드라마상 안쓰러웠던 인물이라면 역사적으로 아프고 안쓰러운 이는 역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다, 드라마에선 사약을 받았지만 실제론 목졸려 죽은 어린 왕, 천연 감옥이었던 청룡포에서 단종, 상상만으로도 애닯은 소년이다,


세령일 좋아했던 동생 숭, 그 숭이 요절했다는 세조의 장남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조의 장남 세자는 드라마에서 처럼 단종 사후가 아닌 단종이 죽기 전에 먼저 죽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꿈 속에 나타난 단종의 눈물이 세조의 손등에 떨어지고 잠에서 깬 세조는 단종의 눈물이 떨어진 손등에 피부병이 난 것을 보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세조의 꿈에서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가 나타나 세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 침뱉은 자리에 피부병이 났다고 한다.
드라마가 기록을 잘 활용하긴 했는데 조금씩 수정이 가해졌다, 기록이 완전한 사실이라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사극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말해주는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시작할 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매력적이었던 인물이 세령이다. 세령은 그 어머니 말대로 참 강단있는 여인이다, 부마 정종이 죽었을 때 김승유는 세령에게 그대와 연정도 놓아버리고 싶었다는 말을 한다, 그 대사를 듣고 승유에 대한 분노를 살짝 느꼈다, 승유의 맘고생 몸고생이 격심하였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세령이 겪고 감내해야 할 맘고생 몸고생도 심했다, 그럼에도 세령인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승유 넌 모니? 솔직히 세령인 승유와 연정을 놓아버리면 어느 정도 맘고생 몸고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세령인 승유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았다, 한결같이 사랑을 지켰던 세령이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가능했다 본다, 마지막회 옥에서 승유가 말했던 대로 세령인 승유 자신보다 더 승유를 아껴주었던 강한 여인이었다. 그리고 승유는 멜로 승유이다, 메이킹 TV를 살짝 봤을 때 박시후가 자긴 멜로배우인데 액션배우가 되었다는 말을 했더랬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공주의 남자에서 박시후는 멜로배우였다.

강단있는 여인 세령인 과연 실존했던 인물인가? 답은 명확히 알 수 없다, 왕실족보 선원보략에는 세조는 2남 1녀를 두었고, 그 1녀인 의숙공주는 정인지의 며느리가 된다, 그런데 세종실록에 보면 세조가 1남 2녀를 두었다고 한다, 세종 사후에 세조가 아들을 하나 더 얻고, 두 딸 중의 한 명을 잃었을 수도 있겠다, 여하튼 세령이의 존재에 대해선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김승유는 김종서의 셋째 아들이 맞다, 순천 김씨 족보에 보면 세번째 아들 승유는 계유정난을 피해 살아남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담양에 그의 묘가 있는 것 같다.

정난이란 나라가 처한 병란이나 위태로운 재난을 평정함을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그렇게 보면 계유정난을 진정한 정난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아록이란 책에는 계유사화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조신(朝臣) 및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던 일을 사화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계유정난보다는 계유사화가 더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수양대군은 세종이 아끼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공주의 남자를 보면서 세종이 수양이라는 이름만 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셋째 아들임에도 왕위를 이었으니 왕위의 장남계승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단종의 비극은 없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역사스페셜을 보니 셋째 아들인 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있었던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라며 왕위의 장남계승을 원했다고 한다, 역사에선 가정이 필요없는 것?!!

역사에 비극이 있었든 없었든 우리는 역사를 기억한다, 정사로 야사로 혹은 전설로, 어떤 형태로든 기억되는 것이 역사이다. 진실은 단 두줄로도 모든 것을 뒤엎을 수 있다는 이덕일 선생의 말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역사는 영원히 기억되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하지만 부질없는 바람이겠지? 어찌되었든 애마커플 승유와 세령의 말달림으로 대미를 장식한 공주의 남자, 3개월 동안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