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고 어지럽기만 한 마음과 정신을 달래기 위해 마우스를 클릭하다 제인 오스틴을 만났다, 제인 오스틴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로도, 바로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도, 그리고 그녀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로도

재기발랄하고 영민하며 거기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 순간 한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왜? 난 그녀와 나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비교'를 생각해 낸 자체가 스스로를 비웃게 만든다. 이것은 나의 못남을 깨달았기 보다는 누구와 누구를 비교한다는 행위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의 처지가 더 낫고 누구의 처지가 덜 하다의 문제를 넘어선 개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비교란 것은...

 


후회, 제인 오스틴이 후회를 했다면 어떤 후회를 했을까? 결혼하지
않고 글을 쓴 것? 이 극을 보면 결국 제인 오스틴은 후회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우지 않는가, 선택은 갈등의 상황을 부른다고, 그건 이것을 취하면 저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갖거나 이 길로 가면 이러 이러한 것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저것을 갖거나 저 길로 가면 저러 저러한 것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엔 선택하지만 미련이라는 것은 미련스럽게 달라붙어 갖지 않은 것에 대한 숱한 상상을 자극한다.

얼만전 뉴스에서 30대 후반 여자와 40대 초반 남자가 미혼인 경우 앞으로 결혼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선 사랑과 결혼을 이갸기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불행한 것일까? 극 중에선 제인 오스틴은 자기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행복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어느 정도 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녀의 일기와 편지는 모두 불꽃 속에서 사그라졌으니까, 결혼이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결혼으로 불행해지는 사람도 숱하니까,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실도 부인하진 않는다, 그 안에 나름의 파랑새가 살고 있을 테니....
내 인생의 만족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죽음을 앞두고 오빠의 파산, 어머니의 비난을 끌어안고 숲에서 혼자 통곡하는 제인의 모습이 남일같지만은 않아 보인다. 인생에는 변수라는 복병이 있다.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복병이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만날 수 있는 요소 요소들, 모든 것을 감내 혹은 즐기거나 누리면서 채워가는 인생의 끝에서 만나는 내 모습은 어떠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내 인생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 외에 또 어떤 것과 마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미래를 볼 수 없으니 그 누구에게도 이 질문의 깨달음은 오지 않겠지. 다만 공허한 상상과 부질없는 공상이 밀려온다.
인간은 그 어떤 것도 자신할 수 없다. 5분 앞에 있을 일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자기가 많이 안다고 생각해도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세상의 극히 일부분일뿐이다. 어떤 선택이 인생을 후회스럽지 않게 만들어 줄까? 
미스터 다아시를 만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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