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것저것 많이 보게 됩니다. 볼 것 많은데 눈이 아픈 것이 원통할 따름입니다. 조선을 모자의 나라로 불렸다지요. 계절, 신분, 성별 등에 따라 온갖 꼴의 모자가 있는 쓰개 문화를 가졌던 조선. 

 

조선을 다녀간 기행문을 보면 조선을 모자의 왕국, 모자의 처눅, 모자 발명국 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단편적인 묘사만으로 조선 모자의 가치를 다 보여주기 어렵고 품위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고 합니다(이한길 기자)

 

 조선의 모자는 400여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아래 그림 속에 있는 여인들의 쓰개에 대해서만 찾아서 정리해 봅니다.

 

 

화관

족두리와 유사한 형태의 머리쓰개로 장식용 성격이 컸다. 화관은 족두리보다는 약간 크고 금이나 비치, 진주를 천에 장식하여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오리미한복

 

족두리

족아, 족두, 족관, 족두리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예복을 입을 때 여성들이 쓰던 관이다. 위는 대력 여섯 모, 아래는 둥글게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 종류와 용도에 따라 장식하지 않기도 않고, 패물로 장식하기도 한다. 챙이 없는 작은 모자형태로 비녀를 질러 고정시킨다.

 

 

굴레

아이가 한복을 입을 때 머리에 두르는 장식용 쓰개의 일종이다. 보통 여자아이에게 많이 쓰웠으나 남자 아이들도 복건 대신 굴레를 쓰는 경우가 있었다. 굴레는 천이 좀 두터워 방한기능을 갖고 있었고, 반강의 아이들에게 씌었던 장신구로 진주나 비취 등의 재물로 장식하기도 했다.

 

 예닮

 

조바위

여성의 쓰개 중 하나로 아얌과 비슷한 방한모로 귀와 뺨을 가린다. 겉감은 검은색 비단, 안감은 비단이나 무명을 대어 겹을 만들었다.

 

 민신홍 한복

 

아얌

액엄이라고도 하며, 겨울에 부녀자들이 나들이할 때 춥지 않도록 쓰던 쓰개로 이마를 덮고 귀는 내놓으며 뒤로 아얌드림을 늘어뜨린다. 아얌은 반가의 여자들이 널리 사용하여 신분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장식용품이기도해 남에게 잘 보이려고 간사스럽게 굴다라는 의미로 아얌 떨다라는 말을 썼고, 이 말이 후에 아양 떨다가 되었습니다.

 

 

남바위

남녀 모두 사용한 방한구로 예복을 입을 때, 무관이 군복을 입을 때 썼습니다. 이마를 덮고, 뒤로 목과 등을 내려 덮는다.

 

볼끼

뺨과 턱을 덮기 위한 쓰개로 서민들이 사용했다. 털을 받치고 가장자리에 선을 둘러 양쪽에 끈을 달았다.

 

 

가리마

가니마는 가리아, 가닐마라고도 하며 차액이라고도 한다. 얼굴을 드러내는 쓰개로 일반 부녀에게 금지되자 의녀나 기녀 등 특수직 여성에게만 허락된 쓰개이다. 너비가 65cm가량의 흰색 비단이나 자색 비단을 반으로 접어 두 겹으로 하고, 다시 그 속을 두꺼운 종이로 배접하여 만든다.

 

 

 

장옷

장의라고도 하며 쓰개의 일종으로 부녀자의 얼굴를 가리려 했던 풍속에서 유래된 것으로 쓰개치마와 비슷하다. 그리 무겁지 않은 소재로 만들었으며 상하층 구분 없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던 쓰개였다.

 

 

전모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말을 탈 때 쓰던 모자의 일종으로 하류층의 쓰개이다. 갓과 비슷한 형태로 화형 혹은 대각형으로 되어있다.

 

 

너울

여화, 나화, 나올, 너울립, 개두, 개수, 면사, 라우라고도 하는 너울은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쓰개로 외출용이며, 특히 기마할 때의 쓰개이다. 격이 높은 쓰개로 자루모양의 여덟 폭 천을 원립 위에 씌워 아래로 드리웠고, 앞부분은 앞을 투시할 수 있도록 홑으로 했으나 그 외 부분은 겹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