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서 정신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가끔은 부정적으로, 또 가끔은 긍정적으로. 최근에 나온지 시간이 꽤 지난 대만 영화 두편을 봤다. 한편은 오월지련五月之戀, 또 한편은 연습곡이다.

 

오월지련五月之戀, 오월의 사랑, 시월애가 아니라 오월애이다, 2004년에 나온 이 영화 속의 진백림과 유역비는 앳되고 마냥 풋풋하다. 하얼빈에서 경극을 익히고 있는 유역비와 타이베이에서 오월천이라는 인기 그룹의 스탭을 하고 있는 진백림은 컴퓨터 채팅으로 만난다. 오월애는 대륙과 대만의 한족들의 여러 사연 중 한 가지가 소재가 되어 이야기가 풀어진다. 오월지련을 보면서 이제 흘러간 물리적인 청춘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연을 맺어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청춘 영화에 더 이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봤다.

 

연습곡은 해안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기도 청춘인가' 생각하며, 한 편의 만화를 떠올렸다. 허니와 클로버.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청춘의 냄새를 진하게 풍겼던 타케모토, 허니와 클로버의 타케모토를 떠올리면 짝을 이루어 귓가를 맴도는 노래가 있다. spitz의 夜を駆ける다.

♬ https://www.youtube.com/watch?v=38BgQRQF4N8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연습곡은 비단 청춘의 떠남과 객기가 아니었다. 청춘을 넘어선 영화였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연습곡을 보면서 그 비유를 생각했다.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삶은 계속되니까 여러 풍경 속에서 .....

https://youtu.be/xVoMIDe-C2Q

 

밍은 대만 섬을 일주하면서 다양하게 느꼈을 것이다. 비를 맞기도 하고, 허벅지가 터져나갈 듯이 페달을 돌리며 언덕길을 넘기도 하고, 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 만나고 헤어지면서 말이다. 하지만 생활의 자리로 돌아오면 여행의 경험은 그렇게 도드라진 삶의 동력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그럼에도 밍이, 그리고 타케모토가 한 여행은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행 2일째, 나와 자전거는 태평양의 바람과 달렸다.

태평양의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멋지고 낭만적으로만 느껴진다. 살면서 가끔은 살아있는 그 시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마음의 여유든, 물질의 여유든, 시간의 여유든,

 

 

피곤하다. 집에서 자니 안전하고 따뜻하다.

생활인에게 음미의 시간은 잠시다. 살아간다는 것은 잔잔한 듯, 그날이 저날같고 저날이 그날 같지만 여러 풍상을 겪게 된다. 그리고 지쳐간다. 그 피곤함을 달래 줄 '집'이란 존재가 간절할 때 쉼과 온기는 비교할 수 없는 위안이요, 동력이다..

 

 

살다보면 가끔은 상처가 생기고, 그 생채기에 밴드를 붙이며 호호 불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상처는 아물어져 각양각색의 상흔으로 남아 세월따라 사람을 변형시킨다, 좋게, 혹은 나쁘게.

 

 

누군가를 위해 연주하고 싶어져 꺼낸 기타의 줄이 끊어져 있음을 보기도 하듯이 삶에는 여러 풍광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도 있다. 

 

 

 

 

밍은 여행 중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른다. 사랑스러운 손자 밍은 청력장애가 있다. 동네사람들은 밍의 부모나 조상 중에 나쁜짓을 한 사람이 있어 밍이 듣지 못하는 것이라 했단다. 할아버지도 예전에 들른 요양소의 장애인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밍은 할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깨뜨린 존재였다.  

 

살아가는 햇수가 쌓이면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경험으로 편견을 깨가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며 나와 타인을 향해 너그러워지기도 하는 반면, 옹졸해지기도 한다. 각 사람이 떠나는 여행의 여정이 다르고, 혹 여정이 같아도 그 여정에서 느끼는 것이 모두 다르듯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다르게 반응한다. 그 반응들은 세상 저편의 나비의 날개짓이 되고, 세상 이편의 폭풍우가 되는 것일 거다.

 

 

밍의 자전거 바퀴가 빠졌다. 바퀴가 빠지면서 밍은 길위로 나둥그러졌다. 살다 보면 고꾸라질 때가 있다, 크고 작게. 그때 자신의 두발로 일어서야 한다. 넘어졌다 일어서는 일, 어마무시하게 진빠지는 일이다. 때론 넘어졌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지 않으면 영영 주저앉아 버리게도 된다.

 

 

밍은 매년 섬일주를 한다는 아저씨를 만난다. 그는 밍의 자전거를 그냥 수리해 준다. 뒤적 뒤적 주머니에서 돈을 찾는 밍에게 자신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필요없다 했다. 자전거를 고치고 나서 밍과 그 아저씨는 함께 길을 갔다.

 

 

이 아저씬, 자신에게 자전거를 사주며 함께 하던 친구를 2년 전에 잃었다. 그리고 혼자 자전거를 탔다. 오랫만에 누군가와 달릴 수 있었던 아저씨는 밍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전하다. 사람과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존재로 주고 받는다. 

 

세월이 쌓이면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수도 늘어간다. 그 중에는 긴 인연으로 오래 같이 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존재만 확인하는데 그치는 사람도 있다. 미녀와 남자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길게 함께 하던, 짧게 함께 하던, 우린 누군가와 함께 한다.

 

 

그러나 함께 가는 것 같지만, 결국 각자의 여정은 혼자서 간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타인의 이해를 받을 수 없어 외로워질 때도 있다. 위로도 외로움도 사람때문에 얻는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것은 밍이 떠났던 여행만이 그렇다. 타케모토는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달랐다. 그러고 보니 타케모토는 그저 북을 향해 지도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밍은 지도를 갖고 움직인다. 연습곡에는, 여행에는 지도가 있지만, 삶의 자리, 실전에는 지도가 없다. 밍이 악보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보면서 연주하듯이 인생에는 지도가 없지만 타인이 가는 길을 보면서 자신의 길을 더듬어 가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밍은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중 한 단란한 가족의 딸아이가 컵을 들고 음료수 너머의 가족들을 바라본다. 아빠는 열심히 갈매기 조나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료수 너머로 보는 세상은 노랗다. 그리고 기포가 떠다닌다. 색안경도 다양한 색깔로 써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의 가지가지 사연을 생각해 본다. 저마다 다르니 그들을 각기 다른 색깔로 보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그렇게 이래저래 다양한 인생이기에 지도가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운명이란 인생의 지도라고 여겨도 될 것 같다. 운명을 믿으면 지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가는 길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운명은 단색의 색안경일 것 같다. 

 

연습하면서 갈 수는 없지만, 산책하듯 한 발 한 발 떼어 간다면 최악의 풍경도 보고 최고의 풍경도 보면서 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일까, 인생이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