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30일과 12월 1일 사이
자정을 넘은 시간은 공식적인 날짜 계산에 의하면 12월 1일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11월 30일로 시작된 나의 하루는 끝나지 않은 시간
오랜 만에 시집을 들고
잠겨가는 낮은 목소리로 한 밤의 고요 속에 시를 흘려 보냈다
시간에 끌려 사는 가슴 속에 더 깊이 깊이 시 한편이 비집고 들어왔다
올 해엔 서해의 태안 바다에 기름띠는 없었지만
나의 마음의 바다엔 시커먼 기름띠가 둥둥



내일을 위한 기도

최 영 미

잘 가라 2007년, 어리석은 날들이여.
봄부터 겨울까지 내가 도모했던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아가, 나무, 푸른 산이 보이면
초라한 한 해를 돌아보는 저녁이 춥지 않아
텔레비전에서 약속들이 쏟아질 때
나는 책장의 먼지를 털었다.

서해 바다를 덮은 검은 기름띠도
우리의 푸른 들판을 가리지는 못해
우리가 자신을 버리지 못하며,
머리 위에서 해가 빛나는 동안, 희망은 죽지 않는다.
내일의 집을 지으며, 그대는 살아갈 힘을 얻으리니

이 냉혹한 별의 어느 서러운 구석에도
따사로운 정오의 햇볕을 허락하시는
당신을 믿지 않았던 저를 용서하시고,
사랑의 힘으로, 절망의 힘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소서.
시든 이파리에 생살이 돋고
제가 강인 줄도 잊어버린 흙바닥에 강물이 흐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창가에 우정이 꽃피게

먼길 떠나는 나그네가
살아서 떠돌
지상의 모든 길이
영원히 푸른 하늘과 닿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라면
가난한 잠을 깨우는
새벽 종소리가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책 정보: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