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축 늘어져 앉아 있던 자리를 털고 터덜터덜 출입문을 향한다
약간의 덜컥거림, 멈춤.... 문이 열린다
완전히 정차하고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을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그저 멍하니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리는 그 찰나의 순간이 영겁의 순간처럼 다가오곤 한다.
지하철이 사람들을 다 뱉어내기도 전에 지하철 입으로 발을 집어 넣을 태세의 사람들이 한 가득 서 있는 곳으로 무심하게 발을 내딛는다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점령한 사람들과 엉키고 설켜서 가끔은 가방으로 가끔은 무심한 발길질로 얻어 맞으며 지하세계를 벗어난다
하늘 아래로 나와도 매퀘한 공기를 만날 뿐이다
방금 지상에 오른 사람들, 지상에 계속 있던 사람들, 지하로 내려가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길 위에서 내가 지나갈 틈을 찾아내야 한다
일상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 조차 쉽게 놓아두질 않는다
사람들 틈을 요리조리 비켜 앞으로 나가면서 휴대전화의 음악 버튼을 누른다
주변의 소음이 덧입혀졌지만 귀에서 마음으로, 뇌로 음악이 흐른다
기계가 무작위로 재생하는 소리에 철저히 나를 바친다
재생되는 음악에 따라 발걸음의 무게와 마음의 밝기가 좌우된다
소리에 나를 맡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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