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묘족은 사실 고구려 유민이다?

2000년 어느 날, 역사학자 김인희 씨는 국제학술대회 중에 들른 중국 남방의 먀오(苗)족 마을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한다. 옛날 고구려 사람들이 입던 바지, 궁고를 먀오족들이 입고 있었던 것.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이 왜 고구려인의 궁고를 입고 있을까?' 이 단순한 호기심이 김인희 씨가 먀오족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당한 후, 당나라는 20만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을 산남 등의 중국 남방 지역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김인희 씨는 이 때 이주한 고구려 유민이 먀오족을 형성한 중심세력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 중 하나로, 먀오족은 송나라 이전의 문헌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문헌에 등장한 이후에도 먀오족의 역사는 수난으로 얼룩져 있다. 원나라, 명나라 등 중국 왕조는 대대로 먀오 족에 대해 민족말살 정책을 폈고,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거나 몰살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먀오쪽은 한때 절멸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먀오족은 계속 저항하고, 패배할 때마다 끊임없이 이동하며 민족의 명맥을 이어왔다.
 
나라도 없고 자신들의 문자도 없지만, 이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여러 형태로 전승해왔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치마 위에 민족의 역사를 수놓았다는 것이다.

문자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민족의 역사를 연구할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중국의 먀오족이 그러한 예다. 먀오족에 의하면 원래 문자가 있었는데 강을 건너 도망을 오는 와중에 문자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대신 먀오족은 자신들의 역사를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보존하고 있다. 치마 위에 조상들이 건너 온 강을 선으로 표시해 둔 것이다. 또한 조상들의 역사를 구술로 전하고 있는 먀오족사시(史詩)에서는 치마 위의 선과 관련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혹자는 구술사가 증거 자료가 될 수 있는가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먀오족사시가 가진 의미와 신뢰성은 종이 위에 쓰여진 글씨 이상이다.
먀오족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앙 관념은 조상 숭배이다. 먀오족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조상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조상과 만나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다. 망자의 영혼이 돌아가는 와중에 만약 조상이 왔던 길을 정확히 되돌아가지 않으면 망자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귀신이 된다. 먀오족이 조상이 이동해 온 길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조상이 온 길을 규칙적인 음율이 있는 노래로 만들어 스승과 제자로 대를 이어 계승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족사시와 치마에 남겨진 기록은 먀오족의 기원을 찾아가는 데 문자만큼 가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먀오족 여자라면 누구나 2~3개의 선이 그려진 치마를 입는다. 이들의 치마 위에 그려진 선이 조상들이 북방에서 도망을 올 때 건너 온 강을 표시한 것이다. 이 치마에 관해 먀오족사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여자들은 문양을 치마에 수놓아
자손이 영원히 잊지 않도록 했다.
끝없이 펼쳐진 논을 그리워하여
그것을 치마 위에 그리고
중간에 큰 논밭을 그리고
청산과 녹수는 주변에 그렸다.

 
위의 노래는 고향마을을 떠나는 먀오족 부녀자들이 고향마을을 잊지 않기 위해 옷 위에 수를 놓는 장면을 묘사한 노래이다. 먀오족은 끊임없이 이주했기 때문에 이동 시 가지고 갈 수 없는 것보단 입으면 휴대가 가능한 옷에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중국 각지에 흩어진 먀오족들이 사는 위치에 따라 치마 위의 선 개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구이저우 지역을 기준으로 북쪽에 거주하는 먀오족은 2개, 그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간 지역에 거주하는 먀오족은 3개의 선을 치마 위에 새긴다. 3개의 선을 가진 먀오족, 즉 강을 3개 건넌 먀오족이 보다 더 긴 거리를 이동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먀오족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두 개의 선이 각각 노란 선은 황하, 녹색 선은 창강(長江)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먀오족이 황하와 창강을 건너 이동해 왔다면 중국의 북방에서 이동해 온 것이니 고구려 유민일 가능성이 더 커진다.

김인희 씨는 먀오족의 치마와 그 의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광시성 서북 지역에 거주하는 중바오(中堡) 먀오족 친인야오(琴銀妖)할머니와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할머니 치마 위에 그려진 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응, 우리가 이곳까지 오는데 세 개의 강을 건너서 왔거든. 붉은 색은 먀오족 말로 ‘이란’이라고 하고 노란색은 ‘이펀’, 녹색은 ‘이주’라고 발음을 하지. 이 세 개의 강을 건넌 후에야 우리는 자유를 찾을 수 있었어.”
“어디에서 오셨는데요?”
“응 그거, 윗옷에 더 정확히 표시돼 있지. 윗옷은 ‘헤주게페’라고 하는데 뒤쪽 엉덩이 쪽으로 늘어진 부분에 문양이 있어. 여기 중간의 붉은 사각형은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이야. 사각형을 둘러싼 붉은색, 노란색, 녹색은 치마에 있는 선처럼 우리가 건너 온 강을 의미하지. 바깥쪽의 붉은 부분은 ‘물이 많은 도랑’이란 뜻인데 이곳에 도착한 후에야 평안하게 되어 농사를 짓고 행복할 수 있었어. 이 물이 우리를 도왔기 때문에 그려 넣은 거야.”

중바오 마오족 여자들이 입는 치마는 '헤주떼'라고 불리는데 주름이 엄청나게 잡혀 있어 화려하고 풍성하다. 무게는 무려 10킬로그램이나 하고, 치마 하나를 만드는 데 흰 천 10미터와 검은 천 10미터가 필요하다고 한다. "무겁지 않냐"고 물으면 이들은 "습관이 돼서 괜찮다. 이 치마는 먀오족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비록 무겁지만 먀오족을 대표하는 것이니 입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먀오족이라도 지역에 따라 치마의 형태, 입는 방식 등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의미하는 2개 혹은 3개의 선은 대부분의 먀오족 복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먀오족은 비록 다른 옷은 현대식 옷으로 바꿀지라도 치마만은 변함없이 입는다. 고향을 떠나왔지만 자신들의 기원과 역사를 담고 있는 치마는 먀오족에게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존재다.

정리: 정다운 기자


저자: 김인희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언어인류학을 공부했으며, 한 장어(漢藏語)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쉐량 교수의 지도를 받아 쓴 논문 〈한국과 먀오족의 창세신화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고구려 유민 문제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6년에는 좀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중국으로 가 현지에서 자료를 모으고 현장답사를 했다.
지은 책으로 『동이신화, 태양을 쏘다』, 『동호 퉁구스의 가신신앙』, 『흰바지야오족 사회와 신앙』, 『소호씨 이야기』 등이 있고, 그 외에 「상고사에 있어 한중의 문화교류」, 「두개변형과 무의 통천의식」, 「초문화와 동이문화의 관계」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 이 책은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뽑은 2011년 3월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아래 책을 원출처로 뉴스인북 편집단이 작성하였습니다.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그 많던 망국의 유민은 어디로 갔을까
김인희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