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길 걷기를 할 때는 아직 복원 공사 중이던 경교장을 강북삼성병원에 들른 차에 돌아보았다. 600년 도읍지 치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이 썩 많지 않은 서울이기에 경교장 복원은 썩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경교장을 둘러보는 그 날, 안내원과 함께 성곽길을 걷는 것으로 추측되는 몇 모둠의 아주머니들이 설렁설렁 경교장 밖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경교장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을 제외한 날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실내화가 마련되어 있는 신발장 맞은편에 경교장 안내지도 준비되어 있다.

 

 

경교장에는 지하, 1층, 2층에 전시실이 있다. 1, 2층은 재현전시, 지하는 경교장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1층의 주요 공간은 응접실과 귀빈식당인 듯 하다. 아래 사진 두 장은 귀빈식당이다. 이곳에서 임시정부의 공식만찬도 했고 김구 선생의 빈소가 마련되기도 했다.

 

귀빈식당에 들어서면 임정 당시의 요인들의 대화가 라디오 극장처럼 흘러나온다. 쿼터리즘이라고 했던가? 현대인은 15분 이상 집중하는 일이 어렵다는 그 리즘. 그 리즘 맞는 것 같다. 좀이 쑤셔 끝까지 못듣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래 사진은1층 응접실이다. 김구선생께서 사람들을 접견하기도 하고 임시정부 회의를 하기도 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봤다. 계단이 좁고 가파랐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살타는 냄새 등이 섞인 몸서리처지는 기운이 감도는 고문실이라도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도 이곳 경교장의 지하에선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그런 상상이 들었다. 경교장은 처음엔 죽첨장이라 불리던 곳으로 금광업자 최창학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경교장에 들러서 처음 안 사실이다.

 

 

지하엔 경교장의 역사가 그림과 함께 도표처럼 정리되어 있고 경교장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고 영상도 끊임없이 반복재생되고 있었다.

 

 

 

지하에는 유물도 몇 점 전시되어 있다. 임정요인 환국기념서명, 속옷밀지, 신탁통지 전단지 등이다. 신탁통지 전단지는 지지 전단지와 반대 전단지 모두 다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열민족인가?! 뭐 의견이 다양하다고 자위해 볼 수도 있지만.... 분열하고 들끓고 식어버리는 것만 반복하지 않고 차가운 머리로 미래도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여 준다면야......

 

 

아래 사진에서 태극기 앞에 놓여 있는 책이 백범일지 초간본이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 같다, 백범일지. 김구 선생이 바라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인상적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힘있지만 그 힘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하고 남을 압제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문화강국, 멋지다. 아이돌 몇 앞세운 케이팝으론 문화강국이 아님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래 사진은 김구 선생의 글씨와 혈의이다. 그의 데드마스크도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 김구 선생은 죽음의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제가 물러가니 미군정이 압박해 오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꿈꾸던 아름다운 나라를 향한 행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하고 가시는 아쉬움은 남겨진 자의 감정이겠지.

 

 

 

빽빽한 도표들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오토마타 체험실이란 곳이 있는데 유리관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임시정부 회의장면 오디오가 들린다. 발언하는 인물 인형은 종종 손동작을 한다. 그래서 어떤 인형이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도 쿼터리즘 덕에 끝까지 듣지 않고 나왔다.

 

 

경교장 2층 여기저기의 모습이다.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곳, 건축 당시엔 호화로운 건물이었겠지만 대략 난감해 보인다. 아래 사진 속에 보이는 방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숙소였다고 한다.

 

 

아래 보이는 문은 건물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음식을 운반하는데 이용했던 공간인 것 같다. 문고리를 잡고 한 번 움직여 보려했으나 실패. 안이 궁금하다.

 

2층 응접실과 김구 선생의 집무실 전경이다. 집무실은 김구 선생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세번째 사진은 김구 선생이 총탄에 맞은 자리이다. 책상에 자리한 태블릿을 통해 김구 선생 서거 당시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자동 재생되고 영상길이가 짧아 끝까지 보는데 큰 무리가 없다.

 

 

돌아가신 곳 바로 앞에 서서 영상을 보고서 묵직해진 마음으로 돌아 나와 만난 계단의 대리석이 알록달록하다. 뭔가 붙어 있어 보니 대리석의 색깔차는 복원 전후의 대리석의 차이였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종종 어떤 장면, 어떤 인물은 뭐뭐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게끔 하는 것 같다. 어디서간 ~했더라면이 넘치는 인생은 안되는 인생이란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시선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성동 계곡에서  (0) 2014.09.12
넘버원 not 세븐일레븐  (0) 2014.05.03
강릉 안목, 선교장  (0) 2013.10.04
강릉 정동진 go jungdongjin  (0) 2013.10.02
파주 벽초지문화수목원  (0) 2013.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