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출처 위민넷
  

논개’(미상1593, 선조 26)

우리가 흔히 아는 이름이지만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과 함께 강물에 빠져 죽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한국형 잔다르크 정도가 그녀에 일반적으로 아는 사실이다.

그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지금 그녀는 어떻게 역사 속에 남아 있으며, 일본에서는 그녀와 그 왜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우리는 잊고 지냈다.

 논개 영정 
논개 영정

남편과 함께 죽음을 택한 진주성 장수의 아내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의 신안 주씨이다. 출생일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구전에 의하면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 주달문이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장수현감이었던 최경회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전라도 지역에서 고경명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자 최경회가 의병장으로 나서 싸우게 되었다. 경상도에서 진주성만이 남아 왜적과 싸우고 있었는데 최경회는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을 지원하여 1차 진주성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593년 최경회는 경상우병사로 임명되어 싸웠으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28일만에 진주성이 함락되고 말았다.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논개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진주목의 관기가 된다. 왜군들이 진주 촉석루에서 승리의 자축연을 벌일 때를 노린 것이다. 15937월 자축연 때 그녀는 기생 행세를 하며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꾀어 벽류 속에 있는 훗날 의암이라 불리는 바위에 올라간다. 그녀는 그를 끌어안고 남편이 자결한 남강에 투신한다.

 의암(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경상남도기념물 제235호) 
의암(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경상남도기념물 제235호)

기생으로 오인된 논개의 슬픈 역사

그녀의 순절은 오랫동안 왜곡되어 남아있게 된다. 조선 광해군 때인 1621년 유몽인이 저술한어우야담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진주의 관기이며 왜장을 안고 순국했다"고 되어 있다. 그녀는 기생으로 남아 있던 것이다. 이는 유교윤리에 젖어 있던 집권사대부들의 편견 때문이다. 관기를 표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임진왜란 중 충신, 효자, 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한다.

하지만 목격자와 주변 진주 사람들은 입과 입을 통해 그녀를 기리기 위해 노력한다. 진주성민들은 성이 함락된 날이면 강변에 제단을 차려 그녀의 의혼을 위로하는 한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다 경종1(1721) 공식적으로 비변사에서 그녀의 순국사실을 국가가 인정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마친 후 100년도 더 지나서야 신분을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영조16(1740)년 그녀를 기리는 사당인 의기사가 의암부근에 세워진다. 관민합동으로 의암사적비를 건립하고 자손에 대한 특전 허락한다. 그 후 지금까지 매년 99일 장수군에서 논개의 추모제인 논개제전이 열린다.

  
원수 일본 장수의 첩으로 다시 왜곡된 그녀의 슬픈 역사

현대에 와서 그녀는 또 한 번 더 일제에 의해 능욕되는 슬픈 역사를 가지게 된다. 1970년대 은퇴한 일본인 건축설계사 우에쓰카 하쿠유는 후쿠오카현 다가와시 근처 히꼬산 자기 소유의 밭을 갈다가 오래된 묘비를 발견한다. 그 비석에는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게야무라는 통칭이고 진짜 이름은 기다 마고베이이다. 사실 그는 논개에 의해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기 전 '신의 칼' 이란 별명을 가진 임란 때 쇼군으로 승승장구한 전설적인 사무라이이다. 우에쓰카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죽음으로 그 많은 승리가 사장된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73년 처음으로 진주를 찾아가 자신은 논개를 존경하는 일본인이라는 마음을 비추며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이를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한다. 또 진주에서 가져간 나무, , 모래, 돌과 한국의 것과 같은 논개 영정을 만들어 히코산 게야무라 무덤 옆에 논개의 무덤을 만든다. 그는 논개를 게야무라와 영혼결혼식을 시키고, 그의 부인과 처제의 영정 옆에 첩으로 세워놓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후 일본에서 논개는 임진왜란 후 왜장을 따라 일본까지 와 함께 해로하다 죽었다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만들어져 퍼진다. 더 나아가 그녀는 '부부금실을 좋게 해주는 신' 으로까지 모셔지게 된다.

뒤 늦게 시민단체에서 알고 사건을 이슈화시키고, 정부와 시 당국에서 이를 무마하고, 가져 간 것들을 모두 회수시켰다.

기생이라는 나라의 오해, 원수 장수의 첩으로 변한 슬픈 역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그녀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떨까?

그녀가 뛰어내린 의암에는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 한줄기 강물이 한결같이 흐르듯이 의열도 천추에 영원하다)”이라고 새겨져 있다. 순국선열들처럼 목숨 바쳐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처럼 목숨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존경하고 기리는 마음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의 영원한 의열처럼 우리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에 대한 마음, 그들에 대한 처우 정도는 영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른 의인들이 지금 제대로 된 처우도 받지 못하고 왜곡된 역사 속에서 가슴 아파 하고 있지 않을지 한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글ㅣ위민기자 김정아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마철 질병 주의보와 건강한 여름나기  (0) 2011.06.28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와 남자  (0) 2011.06.27
2060년까지 찜통 더위 이어져  (0) 2011.06.25
벚꽃  (0) 2011.04.28
내셔날지오그래픽  (0) 201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