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시드니 길버트가 일본의 한 저널리스트와 대담을 했군요.
제목은 '한국인이야말로 역사를 공부하라! -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을 규탄해야 할 것이다'입니다. 아래 원제를 클릭하시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원제: 韓国人こそ歴史を学べ!――朴槿惠大統領は父親を糾弾すべし - ケント・ギルバート(米カリフォルニア州弁護士・タレント)/聞き手=丸谷元人(ジャーナリスト)〔2〕]
blogolos에 1, 2편으로 나누어 켄트 시드니 길버트의 대담 내용이 게재되어 있습니다만, 2편만 보기로 합니다. 길버트씨, 일본을 많이 사랑하는군요.일본이 들으면 좋을 말들을 잘 합니다.
켄트씨가 한국인의 역사공부를 왜 운운하는지 2편 살펴볼까요. 읽어가다 중단할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한국인의 영원한 중2병
일본정부는 일본국민에게 걷은 혈세를 조선반도에 많이 들여 상하수도, 전기, 도로, 철도 등 근대적인 인프라를 도입했습니다.
켄트 : 지금도 북조선에 수풍댐이란 거대한 댐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일본정부가 최신 토목공학기술과 노력을 투입해서 건설했습니다. 그 예산이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구상했던 동경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신칸센계획에 필적하는 액수였습니다.
켄트 : 그것만으로도 당시 일본이 조선반도의 근대화에 전력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수풍댐은 수량, 발전규모도 엄청나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비와호 절반 정도에 달하는 잠수면적을 갖도록 완성해 1944년 당시로서는 발전규모가 세계최대급이었다고 합니다. 구조자체도 요새처럼 견고했다는 것 같습니다.
켄트 : 실은 조선전쟁 중 미군은 이 댐과 '싸웠습니다'. 당시 미군은 북조선에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작전을 실행했는데 이 공격목표의 하나가 수풍댐이었습니다. 미 공군은 댐을 여러번 폭격했고 최후에는 대형 어뢰 공격을 볓 번했지만 그래도 댐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거의 개수를 하지 않아도 지금끼지도 변함없이 발전을 계속하여 북조선 최대 전력원의 하나로 역할하고 있습니다. 메이드인재팬의 저력은 당시부터 건재했습니다.
이처럼 조선반도이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일본을 지금의 한국정부와 매스콤,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찾아보지도 않은 한국인들 다수가 더러운 입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정말 '은혜를 모르는' 영원한 중2병같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돌고 있는 '향기롭지 않은 평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외국인에 의한 일본인 평가는 '정직' '성실' '친절' '근면' '넹정' '관용'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등입니다만, 한국인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알고 지내는 외국인 중에, 알면 알수록 한국에서 정이 떨어져가지만, 나처럼 점점 일본과는 떨어지기 어려운 외국인이 많습니다. 정의감은 강하지만 감정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나라를 우연해 가는 일본인의 평화적인 태도는 질투조차 없이 호감이 간다.
반도국가의 슬픈 생존술
전후에 성립된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증오로 있지도 않은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가 올해 4월 6일, 중학교에서 사용하는 사회교과서에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함한 것에 대해 한국정부가 일본정부는 한국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해 부당한 주장을 강화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등 강력히 반발하여 일본측에 항의했습니다.
켄트 : 일본 정부의 제안으로 교과서문제를 두 국가가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입니다. 한국 측의 교과서와 근거자료를 모두 내놓으십시요. 일본 측도 내놓을 것입니다. 내용이 타당한가 아닌가 이야기해봅시다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2002년에서 2010년까지 두 번에 걸쳐 행한 한일역사공동연구는 유감스럽지만 비공개였습니다. 다음은 공개로 합시다.
왜 한국의 역사인식은 이렇게나 왜곡되어 있을까요?
켄트 : 한국은 전후에 계속 자국을 전승국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고, 연합국 측이었다고 자기세뇌를 하는 노력을 쌓아왔습니다. 그러나 1945년 대동아전쟁종결할 때까지 조선반도는 일본영토였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지금 한국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선조는 일본인으로서 연합국과 싸워 패전의 날을 맞았습니다. 전후에 건국된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가 어떻게 전승국이 되겠습니까.
전시 배상 건도 동일합니다. 지금이 되서야 한국은 위안부문제 등으로 일본정부에 대해서 개인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원래 일본은 개인보상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었을 때 전에 조선인 군인, 군속, 역인 등의 미지불 급여와 은급 등에 대해서 보상을 요구했던 한국정부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한국측으로부터 지용자명부 등 자료제출 조건으로 개별상환을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정부의 제출자료를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개인에 대한 보상으로서 지불해야 하는 것은 지불하고 장래의 우호관계로 이어지도록 했습닏. 일본정부의 대응은 법률에 적합한 진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일본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개인에 대한 보상은 한국정부가 할 것이므로 그 보상금은 일괄적으로 한국정부에 지불해 달라고 했습니다. 일본정부는 상대의 요구에 따라 독립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그리고 민간차관 3억달러 공여와 융자를 했습니다.
일본이 지불한 돈은 당시 한국정부의 국가예산의 2배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켄트 : 법률론으로 말하면 일본은 한국에 대해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했던 것처럼 과거에 투자한 인프라 정비비용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당시 일본정부는 청구권을 모두 방치했습니다.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에 있어서 당시 한국정부의 국가예산의 2배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고도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여 조선반도에 정비한 근대적인 인프라 등을 모두 무상으로 증여하였고, 이후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을 크게 도왔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한일기본조약 후도 한국정부에 큰 돈을 계속 지불했습니다. 1997년에 발생한 한국통화위기, 2006년 원화 폭틍에 대해서 경제지원, 그리고 2008년 리만 쇼크 후의 혼란을 경감시키기 위해 지원 등, 일본은 매회 한국에 조단위 자금을 제공해 왔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스타지움 건설비용도 제공했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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