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저자가 책 시작에 밝히고 있지만 박노해 시인의 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를 그대로 책 제목으로 가져왔다. 자신의 정신적 산물을 내어주는 박노해 시인이 멋져보이는 대목이다.

 

승효상하면 건축을 잘 몰라도 어지간히 알고 있을 정도의 꽤 유명한 건축가이다. 예전에 네이버 지식인 서재에서도 한번 등장했었던 것 같다. 휘발성 기억력이라 가물가물, 아리송하긴 하지만.

 

한번쯤 그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과 조우하게 되었다. 원래 빌려보려던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대여해 왔다.

 

이 책은 저자의 여행기이다. 여행에서 만난 건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저자의 생각과 감성에 다 동의하고 동감할 수 없지만 저자가 만난 공간과 건축에 대하여 조근조근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책 뒷 표지에 보면 문필가 뺨치는 저자의 글솜씨는 건축에 대한 안목에서 나온 것이라는 유홍준의 글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렇다. 속된 말로 저자는 글발이 좋다. 그런데 거기에 건축에 대한 안목과 공간에 대한 자신의 사유가 덧입혀졌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글을 읽기에 만족감을 준다고 본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건축 스승인 김수근, 그리고 건축계의 아는 형 정기용을 만날 수 있다.

 

김수근 역시 한국 건축계의 유명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읽었던 황동규의 시집에서 김수근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전혀 공감되지 않는 시였던 기억만 남는다. 황동규 시는 역시 풍장시리즈가 가장 인상 깊다는 편견의 골을 깊게 만들었던 시였다.

 

건축가 정기용, 저자는 그의 장례에 대해 풀어놓고 있었다. 공간과 거기에 담긴 의미와 철학을 중요시하는 이들인 건축가의 눈에 정기용을 화장하고 묻은 장소는 천박하게 보인다. 망자를 보내기에 너무나 미안한 공간들이었다.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이 도시가, 이 나라 전체가 산 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한 공간도 품고 있다는 인식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천에 깔려 있는 봉분들이 마치 공중부양하고 있고 우리 삶의 공간과는 별 상관없이 생각하고 있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오래 전에 내려받아 놓은 말하는 건축가가 문득 생각났다. 그래서 잠시 책을 덮고 봤다. 책은 승효상의 이야기 속 정기용을, 말하는 건축가 다큐영화에서는 정기용의 이야기 속에서 승효상을 볼 수 있다.

 

 

 

승효상의 책과 정기용의 다큐영화를 보면 이제는 정말 우리 공간에 대한 의식과 시선을 달리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서울의 공간이, 혹은 지방 어디를 갔을 때 거기에 인위적으로 마련된 공간이 아름답거나 멋지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래된 집이나 사찰을 제외하고 말이다. 방문자의 편의를 도모한다거나 혹은 장사를 위해 '개발'해 놓은 것들을 보며 잘 해 놓았네 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약간의 '불편'을 덜었을 뿐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책과 화면을 통해서 우리 건축가들 또한 이 땅의 공간에 대해서 불편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들어내는 미학과 가치를 인정하고, 불편도 감내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600년 도읍지 서울과 반만년 역사의 한반도 곳곳의 공간은 온전히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승효상 저
말하는 건축가
예스24 | 애드온2

 

 

'밑줄긋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의 천재들 Babel no more  (0) 2014.03.22
해설 천로역정  (0) 2014.03.21
사랑하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0) 2013.11.27
언씽킹, 긍정의 배신  (0) 2013.10.18
보통날의 파스타, 요리를 만나다  (0) 201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