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잠시 쉬는 틈을 타 지하철 2호선 합정역 부근에 있는 절두산순교성지를 다녀왔다. 우선 메세나폴리스에 가서 개업한지 이틀되었다는 놀부맑은설렁탕 담다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와 커피 흡입까지 마치고 바로 위의 사진 속의 굵직한 기둥들과 벗하고 있는 계단을 올라가 찻길을 건너 합정동 가로수길이라는 운치있어 보이는 도로를 건너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소속사를 지나고 100주년 기념교회를 지나 만난 나무 계단.
느낌이 괜찮은 계단이다. 계단사이에 자리잡은 평평한 바닥길있어 휠체어나 자전거가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무 계단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돌리면 절두산순교성지라는 현판이 붙은 저 건물을 볼 수 있다.
휴대전화를 들고 연신 사진을 찍는 나를 바라보시던 한 할머니와 같이 계단을 다 오르자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교육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교육관 앞에 아래 사진과 같은 조형물이 있다. 떡하니 있는 두쌍의 칼자루가 살벌하게 '절두'를 상기시켜 주었다. 과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었음을 되새기며 몇 걸음 옮기다 장독대를 만났다.
칼자루로 인해 엄숙해지던 마음이 장독대를 보고 무너져버렸다. 옹기들이 옹기종기 도열하고 있는 모습은 예쁘고 정감가지만 이곳엔 장독대들은 우세스러워 보일 뿐.
생뚱맞은 저 옹기 맞은편 부근에 서있는 아래 사진 속 조각상은 승리의 팔마를 순교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으로 최봉자 수녀님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승리의 팔마....
길따라 조금 걷다 만난 형구돌을 끼고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형구,형틀 체험장이 있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그 시절, 조선시대에 천주교도들이 형벌과 심문을 받던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전시된 형구, 형틀 체험을 할 수도 있다.
형구,형틀 체험장과 함께 한국인 최초의 주교라는 노기남 대주교 기념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체험장과 기념관을 지키고 계시는 분들이 천주교 박해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체험장에서 본 칼을 차고 있는 순교자들처럼 보이는 나무판들이 모여 문을 형성하고 있다. 문 옆에는 절두산 성지에서 처형된 첫 순교자 가족상이 있다. 가족 모두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문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절두산이라 써 있는 돌덩이가 있다.
조선시대부터 양화나루 잠두봉이라 불리며, 한강변의 명승지로 불리던 절두산 성지는 병인박해(1866) 당시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머리가 잘려 숨졌다고 하여 절두산이란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순교자들의 넋이 서려 있는 이 지역을 성지로 조성하였고,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던 1967년 비로소 성당과 박물관이 준공되었다.
한강유일의 원형보존지역인 이곳은 1997년 우리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 제399호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되었다.
병인박해 100주년에 준공된 성당과 박물관 사이에 두 팔을 벌린 예수 상이 있다. 예수 상의 재질과 빛깔이 주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성당과 박물관 건물은 순교 정신과 한국적인 토착성, 그리고 전통적인 고유미를 살려 설계된 것으로 지붕이 갓모양이라고 한다. 부챗살 모양으로 설계된 내부는 하느님의 말씀과 신자들의 기도가 널리 퍼져나가 세상의 빛이 되리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메세나폴리스에서 식사와 차를 마시며 시간을 많이 보낸터라 박물관을 돌기에도 너무 빠듯해 성당과 성지 전체를 골고루 둘러보지 못하고 왔다. 언제가 될른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가보고자 한다.
박물관에서는 2013 신앙의 해를 맞이해 온고지신이라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다. 신앙의 해라는 것은 천주교만의 것이겠지?
우리나라 기독교는 학문을 통해 독자적으로 시작된 특성을 갖고 있다고 옛날에 학교다닐 때 배웠다. 즉, 이땅의 신앙은 말씀으로 시작되어 지식인들을 시작으로 평민에 이르기까지 신앙이 퍼져나갔다.
활자로 신앙을 갖기 시작하여 목숨까지도 담대하게 바쳤던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저 '종교인'들이 대다수인 이땅의 기독교에 대한 반성이 들어왔다.
박물관에서 큼지막한 곤여만국전도를 들여다 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올해 300주년 탄생을 기념하고 있는 강세황이 중국에 가서 성당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글을 썼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기독교와 함께 들어온 서양문물에 관한 문고판 크기의 책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같은 기독교이지만 천주교와 개신교의 용어들이 다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추측되는 천주교인들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박물관 탐방이 너무 풍성했다.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