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위의 구절은 함민복의 시 흔들린다의 마지막 연이다. 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들은 이 시를 공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조태원씨는 여러차례 보도된 뉴스를 통해서 그의 인성이 어떠할지 이미 짐작한 바였지만, 딸들도 다르지 않음을 이번 땅콩회항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막내 조현민씨에 대해서 싹수있는 기업인으로 소개된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라 돈 많은 집에서 재능을 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받아 잘 자랐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복수하겠어 문자를 보면서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의 장난질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사건이 왜 문제인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과하는 것을 보니 급한대로 불을 끌만한 상황판단은 조금 되는 것 같다. 물론 속으로 어떤 말을 되뇌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토지의 어린 서희의 되뇌임이 생각난다. "찢어죽이고 말려죽일거야".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미 다들 보셨겠지만 연합뉴스에 난 복수하겠어 문자 기사를 보시고 싶으신 분은 을 클릭해 주세요.

 

대한민국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도 그런 이야기는 안하는 편이다.

 

그런데 "조현아, 고현정 연상시키는 외모 등이 질투 유발"이란 기사를 보고 입이 근질근질해져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다. 이 기사 제목을 본 고현정씨가 가여워진다. 그녀는 미스코리아에 피부미인아닌가.

 

유치하지만 도대체 조현아씨의 어디가 고현정씨를 닮았다는 건지, 어디를 봐서 수려한 외모인지 잘 모르겠다. 맥신코리아 한승범 대표의 미적 기준이 의문스럽다.

 

사실 한국의 일반대중이 조현아씨에 대한 질투심이 봉지를 열지 않고 건넨 땅콩사건이 이렇게 큰 소란이 된 원인의 하나라는 분석을 일본인의 글을 읽었다(BLOGOS : 땅콩회항 사건으로 보는 한국사회의 깊은 어둠?). 즉, 한국의 일반대중이 갖고 싶은 것들을 조현아씨는 가졌다는 것이다. 재벌집에 태어나 호텔리어들이 동경하는 코넬대를 나왔고 등등... 일응 일리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일본인은 조현아씨에 대한 질투와 같은 맥락의 질투를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과연 한국이 일본에 대해서 그러한지 모르겠다.

 

짧은 소견에 미숙한 판단이지만 이번 땅콩회항이 이렇게나 큰 사건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미디어의 공로라고 생각한다. 대한항공하고 무슨 철천지 원수가 졌다고 미디어가 이렇게 발벗고 나서서 땅콩회황을 보도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치권에서 국민이 싫어할 짓 중에서도 큰 일을 벌이는 것인지 의심의 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다 못해 당장 비라도 내릴 지경이다. 시사에 큰 관심이 없는 자가 볼 때 땅콩회항이 커지면서 정윤회 사건이 조금 분량이 줄은 것도 같다. 물론 통진당 해산도 역할을 한 것 같지만.

 

조현아씨가 구속수감된 첫날밤 보도는 미디어가 자기들을 향해 썩소를 구하는 것 같았다. 조현아씨가 몇 명과 같은 방에 수감되었는지 등은 궁금하지 않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같은 분들이 계속 경제에 힘쓰는 동안 조현아씨가 머지않아 석방될 것은 자명한 일아닐까? 그녀가 오래오래 구속수감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씁쓸한 것은 씁쓸한 것이다.

 

사실 솔직히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곧 두 손을 번갈아 짚어가며 곧 TV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사다코 머리새를 하고 미디어에 노출된 그녀 모습은 보기 꺼림직하다.

 

이번 사건은 '미생'으로 위로받는 중생들의 흐름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미생이 대세인 요즘에 '슈퍼갑질'을 했다는 점, 더더욱 괘씸할 수 밖에. 조현아씨가 만약 조양호 회장의 딸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미생의 삶을 사는 김양호씨의 딸 김현아씨로 태어났다면...., 그래도 그녀는 머리가 좋아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치자. 그래도 그녀는 지난한 취업활동을 거쳐야 어엿한 회사원이 될 수 있고, 회사에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눈물을 삼켜야 할 일도 많이 겪으며, 완생의 길은 진정 long winding road구나라면 술잔을 기울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조현아씨가 뛰어난 인재라고 할지라도 아버지가 조양호씨가 아니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전에 가졌던 것들을 갖기 위해선 나름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피눈물 흘려도 못가질 수도 있고.

 

고용주가 고용인 위에 군림하는 문화는 그만 흘려보내도 되지 않을까, 21세기인데. 대한항공, 아니 돈이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고용주가 경영하는 모든 기업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이 반기를 들고 일하지 않는다고 상정해 본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기업가가 고용의 기회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된 이들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기업가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부를 얻는 것 아닌가. 고용인과 고용주는 상생의 관계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상사들, 그대들도 고용인이다. 같은 고용인끼리 꼭 부하직원에게 갑질을 해야하는 것인지. 모쪼록 2015년엔 21세기에 걸맞는 갑질없는 인격적인 사회를 향해 한발 내딛는 해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