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가능*

영화시간 착각에 덧붙여 꽉막힌 교통 체증으로 예매시간에 늦어 앞에 20분 정도 까먹고 본 영화, 그래도 내 속을 휘젓기에 충분했던 영화였다.

2010년에 만들어진 독일 영화로 도리스 되리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굿바이 레닌, 신과 함께 가라, 비투스, 에덴이 생각났다.

어쩌다 보는 독일 영화들이 나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줄 모르고 본 영화들이긴 하지만 그랬다.
헤어드레서는 나의 기대를 배반한 영화였다.  


유쾌 상쾌한 코미디를 기대하고 예매했건만 어디가 코미디? 보기에 따라서 카티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면서 삶에 대한 긍정을 해볼까 싶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끊임없이 나는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자신을 속이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하는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옆의 그림은 놓친 영화의 앞 부분에 등장하는 장면인 듯하다. 저 몸매에 저렇게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다니다니 대단하다 싶다가 어떤 옷을 입어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다 큼직큼직한 과일모양의 귀걸이, 목걸이가 보기에 매우 부담스러웠다. 친구에게 남편을 뺏기고 딸을 데리고 가난하고 힘겨운 싱글맘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더 부담스러웠다. 난 웃고 싶었다규....

빼버리고 싶어도 빠지지 않는 결혼반지는 친구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이제 카티가 딸 율리아와 남편과 살던 집은 친구와 남편의 보금자리가 되었다는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해 주는 듯이 보였다, 시쳇말로 카티를 두 번 죽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에 커튼 끈을 붙잡고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카티나, 날씬하지만 가슴에 보형물을 넣고 대출받으러 가기도 하고 남편에게 맞고 사는 질케나 그저 암울해 보인다. 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생계를 위해 국가의 도움을 얻으려 고용센터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밀입국하는 베트남 사람들....생명을 얻어 세상의 빛을 보는 것에 대한 회의가 밀물같이 밀려온다

카티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뚱뚱하고 엄마는 알콜중독자였고 친구한테 남편을 뺏겼고  돈도 궁한데 돌보아야 할 자식도 있다, 한마디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여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저 탄식만 나오는 처지다. 그런데 하고 싶은 미용사를 하겠다며 고군분투한다, 나를 고용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미용실 차리겠어, 하지만 모두들 회의적이다, 이 불경기에 무슨 미용실이냐며 망하는 미용실이 한 둘인줄 아냐면서, 사람들 반응에 카티는 불경기여도 머리는 잘라야 하고 손질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멋진 사업기획이라고 은행에 돈을 갖다 줄 수 있다며 은행 대출을 받으러 간다. 물론 대출은 받지 못한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얻긴 한다. 하지만 결국 개업은 할 수 없었다. 카티의 처지가 안쓰럽고 짠하지만 미용실을 개업해서 잘 나가게 된다면 역시 영화는 비현실이고 환상이야 그러면 그렇지 하고 극장을 나섰을 것 같다,
그런데 그동안 상처받고 닫혔던 마음으로 엄마를 힘들게 했던 율리아가 개업이 물거품된 가게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격려하며 따뜻하게 포옹해 준다, 삶이 아무리 엿같아도 자식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살짝 든다.


가게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카티는 위험한 일에 뛰어든다, 그 와중에도 카티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미용실 뿐이다. 
카티의 위험한 행보에서 그녀의 절박함이 보이기 보다는 보통의 일상을 산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일을 만남으로써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했던 사건으로 보였다. 잿빛 구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빛처럼 그 위험한 행보에서 만난 리엔을 통해 카티도 율리아도 치유받았다고 생각된다. 일상탈출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리엔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김영일이다, 독일에서 태어났다니 재독교포인가? 카티의 엉덩이를 보다 그의 엉덩이를 봤을 때 예뻐보였다. 하하하, 베트남 사람치고 등치가 크잖아, 중국사람인가 싶었는데... 어인 뜬금없는 동포애인가?!!

리엔은 카티가 미용실이라는 꿈을 꾸는 동안 함께 가게를 꾸며 주고 개업전에 떠난다. 그의 떠남과 함께 끝난 정신의 휴가, 다시 만난 현실은 냉혹하다. 사회가 만든 규정은 돈 없는 카티의 꿈도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 돈이 돈 버는 세상이요 돈놓고 돈먹기지. 유전무죄, 무죄유죄,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이 사실에 사람들은 돈에 목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아름답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꿈꾸고 긍정을 강조하면서 환상을 독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카티를 잠시 들뜨게 했던 미용실이 몽환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꿋꿋한 카티, 그녀는 미용실을 접은 돈으로 율리아를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낸다. 적어도 율리아는 조금이나마 사회 주류에 가깝게 갈 수 있는 것일까?
리엔과 만남이 카티, 율리아 모녀에게 미친 영향력이 컸다는 것을 리엔이 떠난 후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카티는 베트남 타운의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한다, 자기는 헤어디자이너가 아니라 헤어드레서라며 동화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어디가 동화같다는 것일까?
어쨌든 리엔을 만날 수 있는 휴가를 나도 떠나고 싶어진다. 카티를 보며 다만 위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세수할 때 결혼반지가 빠져 하수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는 것. 이 작은 사고는 더이상 과거가 그녀에게 굴레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증표로 보였다. 이를 통해 위로 받는 나도 카티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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