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상영시간을 5분여 남기고 입장했는데 극장 안에 한 사람도 없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영화 시작하고 20여분 정도 지나서도 나와 동행인 뿐이었다.
나중에 한 사람이 더 들어오긴 했는데, 그 아주머니가 우릴 보고 깜짝 놀랐었다.
그러면서 그 아주머니 왈 '어머 사람이 있었네'
여튼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영화가 홀대받는 사실이 아쉬었다.
본시리즈 같은 액션도 없고 인셉션 같은 상상력도 없고 브리짓 존스 같은 달달한 로맨스도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은 영화였다, 정말.
오랜만에 '감동'이라는 말을 써도 좋을 영화였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액션, 로맨스, 긴장, 스타 이런 것은 없었지만 이 영화에도 반전은 있었다.
저 사람이 주인공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전혀 엉뚱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영화 초반에 나타난 대단한 반전, ㅎㅎ

톰과 제리, 이름만으로는 앙숙이여야 하는  이 커플은 정말 안정적인 부부다.
특히나 제리의 경우 사려깊고 친절하다. 하지만 엄격할 때는 매우 엄격하다. 
여하튼 그녀가 뿜어내는 안정의 아우라는 대단했다.
직설적인 톰과 완곡한 제리... 균형잡힌 관계를 잘 꾸려가는 이들이었다.
아참 이 영화에는 미남, 미녀가 한 명도 나오질 않는다. 음, 톰의 형 로리의 경우 젊었을 때 꽤나 미남이었을 것 같지만 단지 노인일 뿐....그래서... 보통의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감동이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란 소박한 안정감에서 나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제리가 농장에서 불어오는 미풍을 눈을 감고 느끼는 장면이 어찌나 인상적이든지...영화를 보면서 소박한 행복에 완전히 동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저것이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의 최대 행복이야 하며 말이다.
특별하게 성공하지 못한, 역사 속에 이름없이 살다 간 숱한 사람들과 같은 소시민일 수 밖에 없는 그저 그런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이 무력하게 느껴지지 않는 행복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솔솔

그리고 또 결혼의 의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서 정호승의 시집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람은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 인(人)의 모습처럼 서로 기대어 살아갈 친밀한 사람이 필요하다.
결혼은 가족이라는 나만의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메리
그녀의 모습은 딱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그렇다.
제리가 메리에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
제리는 이 부분에 있어 정말 엄격했다.
물론 책임져야하지...그리고 메린 정말 그런 말을 들어도 된다 싶긴 했다.

톰과 제리가 안정되고 넉넉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만든 가족의 울타리로 인해 철저히 소외되는 메리와 로니의 모습을 보면서 괜찮은 가족이란 남에겐 참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너무나 상대적인 모습으로 '괜찮은 가족'이 없는 사람의 외로움을 어찌나 심화하는지...심화를 넘어 극대화가 맞는 듯하다. 톰과 제리가 만들어낸 다복하고 안정된 가정은 타인들에겐 철저히 냉혹하게 보였다..

영화의 끝이 상당히 당혹스럽긴 했다.
하지만 메리의 모습...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혼자만의 깊은 씁쓸한 침묵으로 빠져 들어간 메리의 그 시간, 
너무도 강렬하게 마음에 꽂혔다. 
싱글인 동행인과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사람의 생리와 삶의 모습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고, 세상의 모든 계절을 똑같이 겪지만 어떤 이들에겐 인생은 잔혹할 뿐이고 어떤 이들에겐 따사롭다. 또 어떤 이들에게 핑크빛이요 어떤 이들에게 푸르고 어떤 이들에겐 잿빛이다.
각각의 인생의 의미가 다르고 인생의 빛깔이 다르지만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고, 같이 대화하고 시간을 공유할 사람이 필요하다. 결혼은 이를 위한 것일 게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맴돈다. 메리의 모습, 켄의 모습 등이 짠하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하기도 했던 이 영화, 잠시 멈춰 네 인생은 지금 어떤지 한 번 돌아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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