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를 읽다
고우, 3번째 결혼!
현대와 다른 전국시대의 결혼관
江たち三姉妹が激動の人生を送った戦国時代。この時代の結婚に対する観念は、現代とは全く異なるものでした。「3度目の結婚」というと、いまでは好奇な目で見られがちですが、戦国時代ではよくあること。政治状況の変化によって離婚させられたり、戦で相手を失ったりと、江の例からも明らかなように、本人の意志とは別に結婚生活の継続が困難に陥ることが、現代の私たちが予想するよりもはるかに多くありました。
고우의 세 자매가 격동의 인생을 살았던 전국시대. 이 시대의 결혼관은 현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세 번째 결혼'이라 하면 지금이야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전국시대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혼당하거나, 싸움에서 배우자를 잃거나, 고우의 예에서 보여 주듯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곤란해지거나 하는 경우가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았다.
戦国時代にヨーロッパから日本に来ていた宣教師たちは、ヨーロッパ本国の人々の結婚観と、当時の日本人の結婚観の明確な違いを、次のように示しています。
ヨーロッパでは、罪悪については別としても、妻を離別することは最大の不名誉である。日本では意のままにいつでも離別する。妻はそのことによって、名誉も失わないし、また結婚もできる。
전국시대에 일본에 와 있던 유럽의 선교사들은 유럽의 결혼관과 당시 일본의 결혼관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차이를 다음과 같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죄를 지은 경우 빼고는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최대의 불명예이다. 일본에서는 뜻대로 언제든 이혼한다. 아내는 그로 인해 명예를 잃거나 하지 않고 다시 결혼할 수 있다.
これは、織田信長をはじめ諸大名と親交のあったポルトガル人宣教師、ルイス・フロイス(1532~97)の『日欧文化比較』という本に見える文章ですが、戦国時代の日本人は、離婚を不名誉なこと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ようです。
しかし、喜ばしいことでもなかったでしょう。夫・豊臣秀勝の死から3年後の文禄4年(1595)9月17日、天下人・豊臣秀吉の命により、6歳年下の青年武将・徳川秀忠と3度目の結婚をすることになった江。
그러나 기뻐할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고우는 남편 풍신수승(도요토미 히데카쓰)이 죽고 3년 후 문록 4년(1595) 9월 17일 천하인 풍신수길의 명에 의해 6살 아래의 청년 무장 덕천수충(도쿠가와 히데타다)과 3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のちの徳川幕府二代将軍・秀忠の正室なら良い話じゃないか」と思われる方もいる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はあくまで結果論です。当時、豊臣家と徳川家の間には歴然たる力の差があり、結婚相手の秀忠が将来、二代将軍になるとは誰も予想しえないことでした。最愛の娘・完との別れは、幼くして父・浅井長政、母・市を失った江にとって、胸が張り裂けるほどつらいものだ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후에 덕천막부의 이대 쇼군 수충의 정실이라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당시 풍신 가와 덕천 가 사이에는 힘의 차가 뚜렷했고, 결혼 상대인 수충이 장래 이대 쇼군이 될 것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딸 사다와 이별은 어려서 아버지 천정장정(아자이 나가마사), 어머니 시(이치)를 잃은 고우에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괴로운 일이었지 않을까?
출처 NHK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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