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고우 읽기
모두 정치! 이시다 미츠나리의 정권 플랜
豊臣秀吉を敬愛し、「刀狩り」や「太閤検地」など、数々の主要政策を執行してきた豊臣政権のキーマンのひとり・石田三成。頭脳明晰(めいせき)で職務に誠実な三成は、まさに“サラリーマンのかがみ”! と言いたいところですが、生真面目すぎるのがたまに傷。有能な実務官僚でしたが、その一途な性格から福島正則、加藤清正ら現場担当の同僚とは、非常に仲が悪かったようです。
そんな三成が、秀吉の死後に目指したもの、それは、集団指導体制による政権運営です。
풍신수길을 경애하며 카타나가리나 태합건지 등 여러가지 주요 정책을 집행했던 풍신 정권의 키맨의 하나 석전삼성(이시다 미츠나리). 명석한 두뇌로 직무레 성실한 삼성은 완전히 "샐러리맨의 거울"!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고지식한 것이 옥의 티. 유능한 실무관료였으나 외곬수적인 성격탓에 복도정칙(후쿠시마 마사노리), 가등청정(카토 키요마사) 등의 현장담당의 동료와는 상당히 사이가 나빴던 듯하다.
그런 석전삼성이 풍신수길 사후에 추구했던 것은 집단지도체제에 의한 정권운영이었다.
刀狩り 카타나가리 무기몰수, 1588년 : 히데요시는 토지조사 과정에서 모든 무사를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시키고, 병농분리를 실시했다. 또한 농민의 봉기를 방지하고 경작에만 몰두하도록 농민으로부터 일체의 무기를 빼앗는 카타나카리를 실시하고,조선침략에 대비해 1591년에는 히토바라이령(=신분통제령)을 내려 각 신분별 전국 인구조사를 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에도시대 사농공상 신분제의 기초가 된다. 太閤検地 태합검지 타이코켄치 : 풍신수길의 지배정책은 노부나가의 정책을 계승한 것이지만, 새롭고 획기적인 정책은 검지(토지조사)와 도수(刀狩, 무기몰수)이다. 농민을 장악하고 조세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해서 전국을 동일한 기준으로 토지조사했다. 그 전 시대의 주먹구구식 검치(檢地, 켄치)와 차별화하여 태합검지(太閤檢地, 타이코켄치, 1582년)라 한다. 태합(타이코) : 섭정·태정대신의 경칭, 전관백(前關白)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
秀吉時代はトップダウンのワンマン経営でしたが、跡を継いだ秀頼はわずか6歳。秀頼に政治を行う能力はまだ備わっておらず、秀吉時代と同様とはいきません。
そこで三成は、五大老と五奉行の多数決による政権運営を提案。自ら積極的にリーダーシップを発揮し、集団指導体制の確立に尽力しています。実力ナンバーワンの徳川家康と人望ナンバーワンの前田利家の勢力を均衡させてバランスを取りつつ、自らを中心とする官僚機構を確立。そして、秀頼が成人したあかつきには円滑な政権移譲を行うというのが、三成の計画でした。
풍신수길시대는 하향식 원맨 경영이었으나 뒤를 이은 풍신수뢰는 불과 여섯 살. 수뢰에게 정치를 행할 능력은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풍신수길 시대와 같이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석전삼성은 다섯 대로와 다섯 봉행의 다수결에 의한 정권운영을 제안한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여 집단지도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실력 넘버원인 덕천가강과 인망 넘버원의 전전이가의 세력의 균형을 만들어가며 자신을 중심으로한 관료기구를 확립, 그렇게해서 풍신수뢰가 성인이 되면 원활한 정권이양을 한다는 것이 석전삼성의 계획이었다.
しかし、その計画は早々に見直しを迫られてしまいます。慶長4年(1599)閏3月3日、前田利家が病死。三成ら政務官僚チームと家康、そして、福島正則、加藤清正ら現場担当チームをとりなしてきた重鎮の死により、かろうじて保たれてきた均衡が一気に崩れます。
翌4日、朝鮮出兵の論功行賞に不満を募らせていた福島正則、加藤清正、黒田長政、細川忠興、浅野幸長、池田輝政、加藤嘉明の7将が、三成を殺そうとして大坂の三成邸を襲撃。家康のとりなしにより一命は取りとめたものの、三成は居城・佐和山城への蟄居(ちっきょ)を命じられます。
4일, 조선출병의 논공행상에 불만이 더 심해진 복도정칙, 가승청정, 흑전장정, 세천충흥, 천야행장, 지전휘정, 가승가명 등 7명의 장수가 석전삼성을 죽이려고 오사카의 석전삼성의 집을 습격한다. 덕천가강의 중재에 의해 목숨을 건지기는 하였으나 석전삼성은 자기 영지인 사와야마성에 칩거를 명받는다.
三成にとって、あまりにも痛すぎる政権内部からの離脱。自らの人望のなさが招いた失敗とはいえ、同じく秀吉を敬愛し、秀頼を思う同僚たちの愚行を、さぞや苦々しく思ったことでしょう。このあと、政権運営は家康の専横を許し、三成は佐和山城で復権のチャンスをうかがうことになります。
석전삼성에겐 너무나 괴로운 정권으로부터 이탈. 자신이 인망이 없어 불러온 실패라고는 하나 동일하게 풍신수길을 경애하여 풍신수뢰를 생각하는 동료들의 우행을 필시 씁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정권운영은 덕천가강이 전권을 쥐게 되고 석전삼성은 사와야마 성에서 복권의 기회를 살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