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구, 얼음땡,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사나운 개 한마리. 내가 갖고 있는 골목길 기억이다.

요샌 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다. 사교육을 말하기 이전에 동네에서 노는 일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일터, 대로변도 아닌데 수시로 달리는 차와 오토바이, 차 한대 정도는 너끈히 다니고도 넘을 정도의 넓이에다 도로도 아닌데 아스팔트까지 쫙쫙 깔린 골목길에서 뛰어 놀다가 무슨 봉변을 어떻게 당할지 어찌 알겠어. 얼마전 집 앞에 새 한마리가 죽었다. 자동차에 압사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젯밤새 거세게 내린 비에도 그 아이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골목길에서도 '로드킬'이 일어나는 것인가 싶어 이래 저래 찜찜했던 작은 새 한마리의 죽음. 이제 골목길은 사람이나 동물 모두에게 느긋한 마음으로 지나다닐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선 우리 집 앞은 '그 골목이 말을 걸다' 에서 말하는 골목이 아닐 것이다.

 

골목길에서 널 기다리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골목길~~

이런 가사를 품고 있는 노래가 있다. 요즘 사람들은 골목길하면 버스커버스커의 골목길 어귀에서를 떠올리겠지만 내겐 골목길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노래 말미에 골목길 골목길을 반복하는 이재민의 골목길이다.(클릭!!) 이젠 그런 노래가 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지만 노래는 이미 기억의 어느 구석에 꽁꽁 묻혀졌고 노래처럼 책 속의 '골목'도 기억 속에만 남아가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어렸을 적엔 대한민국에 있는 옛것들이 다 후져보였다. 하지만 살아온 날들이 많아지면서 어린 시절 우리 곁에 있었던 것들이 후진 것들만이 아니었음을 알아 가게 된다.

 

책에서도 그저 사라져만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자주 드러난다. 세월이 가면서 끌어안고 있을 수 있는 옛것들은 한계가 있기 마련일 터, 그리고 당연히 새 것들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린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켜야 할 '가치'마저 갈아 엎기를 너무 쉽게 한다. 저자가 골목 탐방을 하면서 느끼는 아쉬움에는 그런 쉽게 갈아 엎는 행위들로부터 비롯된 것들도 많다.

 

600년 도읍지 서울, 궁궐 몇 개만으론 현대와 과거가 공존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없어보인다. 이광수의 집이나 홍난파 가옥이 지켜지듯 미당 서정주의 집이나, 정지용의 집 등등 역사의 흔적들은 지켜져야 한다.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무슨 무슨 터였다는 표석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먹고 살기만으로도 버거운 사람들이 그 표석들을 들여다 보기는 쉽지 않다. 표석 이외의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표석 이외의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생활이 바쁜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겠지만 곳곳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이 보관된 서울과 그렇지 않은 서울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가끔 지명의 유래가 궁금해 질 때가 있었다. 에전에 도서관에서 지명의 유래에 대한 책들을 몇 권 발견하긴 했지만 서가에서 꺼내 들어  넘겨 볼 때 그다지 읽고 싶은 모양새가 아니어서 번번히 제자리에 돌려 놓고 오곤 했었는데 한번쯤은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내수사가 있었던 내수동, 석수가 많아 석수동, 신영옥의 영화사가 있었던 안양의 신필림로 등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명들은 나름의 의미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종과 단종비의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는 영도교처럼 말이다.

 

요새 방영하고 있는 닥터진을 보면 진의원으로 분하고 있는 송승헌이 한 언덕에 올라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다가 그곳이 미래에 자기가 일하던 병원 옥상에서 내려다 보던 곳의 옛풍경임을 알아차리는 장면이 있었다. 닥터진처럼 타임슬립을 해서 내가 발딛고 서 있는 곳의 예전 모습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풍경도 우린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숨은 이야기는 더더욱 모를 터인데 과거의 모습까진 무리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미 잃어버린 '골목'의 정취야 되찾을 수 없다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의 내 삶의 풍경이 되는 것들을 마음에 눈에 잘 담아 두고 싶다는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나의 생활반경 속으로 절대 들어올 것 같지 않은 서울의 다른 구역을 향해 지하철에 몸을 실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황인숙 저
그 골목이 말을 걸다
김대홍 저
서울의 숨은 골목
이동미 글,사진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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