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지음
규장 펴냄

한 꼭지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겠노라 했는데 어느새 두 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책의 두께는 현재 팔리는 책들의 평균치 정도되지만 글이 그렇게 빡빡한 편이 아니고 헐겁다면 헐거운 편이라 그럭저럭 금새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교회다니면서 소위 신앙서적이라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 책과 이용규 선교사에 대해선 들은 풍얼이 있을 것이다. 내려놓음의 경우 기독교 서적 중의 상당히 잘 팔린 책이었기도 했고 말이다. '책이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이 나온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에 이어 최근에 같이 걷기 라는 책까지 나왔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고 와서 읽어가면서 책도 때와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확실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익히 알고 있던 책이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선물까지 했었지만 나는 결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책이었고 읽을 생각도 없었건만 읽고야 말았다. 내려놓음을 읽고 이용규 선교사의 책은 '내려놓으려' 했으나, 알음께서 본인은 다 읽으셨다면서 더 내려놓음을 주셔서 두 권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내려놓음 한 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더 내려놓음을 보니 내려놓음의 심화에다 내려놓음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한 더 내려놓음에서 제시하고 있는 면도 있다. 그러나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야 라는 태도로 책을 대하는 순간 내려놓음도 더 내려놓음도 그다지 의미를 발견하거나 마음에 울림을 얻을 일은 없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쳇바퀴돌듯한 반복이 무한반복하는 듯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짱돌이 날아들기도 하고 쨍하고 볕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속단할 수 없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야 말로 알듯 모를듯하여 인간의 얄팍한 앎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삶이 사람을 향해 조롱으로만 일관하지 않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어가는 삶이 내게 던져주는 것들도 분명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전보다 더 복잡해진 마음과 머리를 끌어안고 살다보니 '내려놓음'이란 말이 급작스레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물론 책이 말하는 내려놓음, 더 내려놓음은 내가 끌리고 내가 정의한 내려놓음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와 하버드를 나와 몽골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훌륭한 가방끈을 갖고 있는 저자가 제시해 놓은 내려놓음이란 화두는 단순히 내가 갖고 있는 '잘남'을 내려놓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표현이 어찌되었든 제대로 믿자는 이야기라고 본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개독이라 불리고 있다. 참람한 일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말하는 내려놓음을 한국의 모든 기독인이 실천하고 산다면 개독이라는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어디가서 교회다닌다는 이야길 하지 않는다. 찾는 이 적은 블로그이지만 공개적으로 나 교회다니오 라고 밝히는 것은 내게 있어 큰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어쨌든 밝히지 않는 이유는 나의 불완전함을 알기에 기독인이라고 밝혀봤자 교회에 욕을 더할 뿐 칭찬을 더할 자신이 없어서이다. 살짝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비겁함도 결국은 100% 귀의하지 못했기에, 제대로 믿지 못하기에 그러할 것이다. 

솔직히 교회다닌 년수가 조금 되고 신앙서적이라는 것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책 속의 이야기가 못 들어본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톡 까놓고 말하자면 누누히 들어왔던 이야기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삶 속에 온전히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라 본다. 어쨌든 두 권의 책을 덮으면서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반성 또 반성이라는 결론이다. 그리고 제대로 믿고 행하는 기독인이 되어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내려놓음
이용규 저
더 내려놓음
이용규 저
같이 걷기
이용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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