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쇄심옥, 보보경심, 황실의 형제, 궁쇄주렴, 줄줄이 중국드라마를 보다 보니 문득 청조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드라마마다 조금씩 다른 설정 등을 보면서 중국얘들은 드라마를 만들때 얼마나 왜곡질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중국 근대사까지 이어진 청나라, 사료도 많을 것 같고 나름 할말이 많을 것 같은데 상식수준에서 청나라를 엿보려면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할까 라는 생각은 사실 하지 않았고, 위에 열거한 드라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 강희제의 4황자 옹정제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궁쇄심옥의 청천이 옹정제라는 책을 들고 있었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청천이 왜 옹정제에 매료되었는지 옹정제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런데 옹정제로 검색을 해 보니 책이 많질 않다. 아니 몇 권 없다. 두어 권 검색된다. 우리나라 도서 인프라의 빈약함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좋은 책이 있어 돈과 노력을 들여 번역해 출간해봤자 팔리질 않는 현실을 알고 있으니 출판사들을 욕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지식편식과 일천함을 탓할 수 밖에.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으면서 주인공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신선했었다. 다양한 문화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연구로도 밥먹고 살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았었다.
어쨌든 동네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어 미야자키 이치사다가 지은 옹정제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옹정제는 유명한 황제는 아닌 것도 같다. 일단 아버지 강희제와 아들 건륭제의 재위기간이 길다보니 상대적으로 13년이란 짧은 기간동안 황제였던 옹정제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비교적 분량이 적고 내용도 옹정제에 대한 개략 수준으로 일반독자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일단 옹정제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있기도 했지만 책 자체의 글도 잘 읽혀지는 편이라 금새 읽을 수 있었다.
저자 미야자키는 옹정제에 대해서 우호적 입장에서 이 책을 기술한 것 같다. 개략적이고 우호적 입장에서 지은 책으로 독자는 개략적이고 우호적인 상식을 갖추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보보경심에서 보면 옹정제가 잠잘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상소를 보는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그 부분은 사실인 듯 하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옹정제가 13년 동안 한결같이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래 황제 노릇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책의 저자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저자는 옹정제식 치세는 13년 정도가 한계였고 더 길어졌으면 다른 변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강희제의 적자였던 폐위된 태자가 실제로는 궁쇄심옥이나 보보경심에서 보인 것처럼 학문이 부진하거나 맹하진 않았던 것 같다. 유일한 적자로서 강희제가 최고의 선생들을 붙여 줬기에 역사 속 태자는 일정 수준은 넘어섰던 것 같다. 태어나서 얼마되지 않아 태자로 책봉되었으니 심혈을 기울여 키웠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드라마에 현혹되지 말 것!
궁쇄주렴에서 등장하는 이위라는 이름을 가진 자도 실재했다. 물론 드라마 속의 이위와 역사 속의 이위는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속의 이위가 상당한 수완가였던 듯 한데 드라마 속 이위도 약삭빨라보였다. 그리고 궁쇄심옥의 소언이 연갱요의 누이 신분으로 후궁이 되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연갱요의 누이가 옹정제의 후궁이었다. 중국드라마 뿐 아니라 우리드라마도 그렇고 실재했던 인물들에 허구를 입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사극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과하면 물론 아니되지만.
청나라 초기의 황제들은 소수의 만주족이 다수의 한족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만주족이 한족의 지배자로 있었지만 전 왕조인 명의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킨 것은 아니었다. 명조의 관료체제가 그대로 존속되어 있었고 옹정제는 그 틀을 깨지 않고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혁신적인 성과가 있진 않았던 것 같다. 개혁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관료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고 두고 두고 역사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만주족 황제들은 한족을 다스리기 위해 한족의 문화를 익혔고 한족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여 그 안에 녹아들면서 결국 한족화되었다.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청조말기의 망조는 한족화됨으로써 가속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강희제는 서양문화를 좋아했고 옹정제도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양문화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본래의 만주족 특성을 잃지 않았다면 말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국가들로 인한 그런 굴욕들은 겪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에 대한 가정이 무의미하고, 우리 근대사도 썩 즐겁지 않으니 중국의 근대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만주족은 이제 완전히 한족화 되어 역사 속 유물같은 존재가 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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