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토요일 오후, 뮤지컬 닥터지바고를 보고왔다. 롯데시어터에서

롯데시어터의 내부 인테리어는 뮤지컬이 아니라 오페라를 보러 온 느낌이 들게 했다. 예매를 빨리한 편이 아니어서 그나마 앞자리에서 관람하려면 이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어떤 블로그에서 롯데시어터 이층 경사가 심해서 싫다는 이야기를 보았던지라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실재로 앉아 보니 경사가 불안감이 느껴지는 정도도 아니었고 무대를 보기에 적당한 각도였다. 처음 가본 뮤지컬 전용극장 롯데시어터, 찾기도 쉽고 나쁘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시간여유가 있어 혼자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다들 사진 찍고 찍어주느라 분주하다. 그렇게들 열심히 찍은 사진은 싸이, 페이스북에 올리거나 나처럼 블로그에 올리는 것일까? 여튼 혼자는 초큼 심심한 법인가 보다. 사진찍는 이들을 뒤로 하고 기념품을 둘러 봤다. 포스터의 이미지가 박힌 머그컵, 노트, 타월....흠...구매욕구 전혀 자극되지 않는다. 그저그런 상품 중에 눈에 띄는 것. 그건 바로 DVD, 케이스의 그림이 참 옛스럽다. 디비디는 오마 샤리프 주연의 닥터 지바고. 닥터지바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마 샤리프의 지바고가 라라와 함께 설원을 썰매를 타고 달리는 모습과 함께 흐르는 라라의 테마이다. 나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모두에게 엇비슷하지 않을까.



사실 너무 어려서 본 닥터지바고는 너무 지루했고 당최 기억나는 거라고 썰매타는 것뿐이었던지라 뮤지컬을 보러 가기전 예스 24에서 특가판매하는 키아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닥터지바고 디비디를 구매했다. 
키아라 나이틀리의 라라는 너무 관능적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아라 나이틀리가 출연하는 영상을 볼 때마다 참 마음에 안들어 라는 생각이 든다. 4분의 1정도 봤는데 코마로프스키와 라라의 보기 불편한 정사에 대한 장면이 많았다. 결국엔 디비디 구입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뮤지컬을 보러 갔다.

뮤지컬은 솔직히 살짝 지루하기도 했고 어수선하기도 했다. 긴 이야기를 제한된 시간 안에 제한된 무대에서 표현해 내기 위한 속도감이 오히려 정신사나웠고, 지바고 부처와 라라 그리고 코마로프스키의 사중창 부분은 청중의 입장에서 가장 곤란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뮤지컬 넘버들은 아름다웠고 볼만한 공연이기도 했다. 단촐한 무대에서 그 격동의 시절을 다 담아냈고, 책상하나의 활용이나 무대 가운데에 생기는 홈의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조바고 조승우가 발산하는 카리스마는 그 명성 그대로였다. 긴 말이 필요없다. 매료당하고 왔다 그에게, 그리고 김지우. 그녀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에게서 나오는 목소리는 뜻밖이었다. 티비에서 살짝 본 그녀에 대한 인상이 크게 인식하고 있진 않았으나 그다지 좋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이번 무대를 통해서 탤런트 김지우보다는 뮤지컬 배우 김지우가 그녀에게 더 어울리고, 더 반짝여 보이게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커피를 사러 줄을 서있는데 뒤에 서있던 이들이 뮤지컬이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이야기에 너무 중심을 둔 것 같고 무엇보다 지바고와 라라를 불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래 닥터지바고는 러시아 혁명 전후를 살던 남녀의 사랑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일부러 짚어본다면 이미 각자의 배우자가 있는 지바고와 라라는 불륜 맞지 않는가?! 지바고의 아내 토냐가 라라가 지바고의 뮤즈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인정하고 그들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졌을 지언정 엄밀히 따지면 그렇잖아. 그렇지만 닥터지바고가 명작인 것은 격동, 격변의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읽을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이 공연에 대한 감상으론 생뚱맞을 수도 있겠으나 극 중의 볼셰비키 혁명에서서 사람이란 참 극단에 치우치기 쉬운 존재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찌되었든 즐거운 관람이었다. 공연관람비가 좀 더 싸다면 자주 즐길 수 있을 터인데 아쉽다.

유투브에서 호주 배우들이 부르는 닥터지바고 넘버들을 찾을 수 있다. 같은 곡조에 같은 내용의 가사일 터인데 언어가 달라지니 느낌이 살짝 다르다. 어찌되었든 멋지다. 작품을 만든 이들과 이를 실연한 배우들에게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