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블루스퀘어

엘리자벳 김선영, 죽음 김준수, 루케니 박은태, 요제프 민영기, 소피 이정화, 루돌프 김승대

위의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날 엘리자벳을 보았다.
엘리자벳의 이히 게회르 누어 미히, 난 나마의 것,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르베이 아저씨, 참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셨다.

뮤지컬을 많이 보러 다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배우들의 뮤지컬을 볼 때 마다 우리나라에 목청 좋은 사람들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공연장을 찾은 날 연기한 배우 박은태, 이정화도 인상적으로 노래하는 배우들이었다. 특히 이정화의 목소리는 기품있게 들려 소피 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 생각되었다.

우리나라 배우들의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오스트리아 원판 뮤지컬을 영상으로 보고 갔었다. 원판과 비교해 보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이 낯설기도 하고 그쪽의 문화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간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엘리자벳의 결혼식은 오후 6시에 치루어졌는데 엘리자벳의 암살범인 루케니가 그 시간의 결혼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그렇지만 엘리자벳의 결혼식으로 적절하다고 한다. 이 나래이션을 들으며 '왜?'라고 물었었다. 그리고 죽음 역의 준수가 와이어에 매달려 종을 쳤는데 위험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장면이 조종을 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결혼식에 조종을 쳤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결혼식과 조종, 이외에도 놓친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 않는가. 만약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고 갔더라면 결혼식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뮤지컬을 전반적으로 더 충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원판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 판 엘리자벳은 의상, 무대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스퀘어가 그다지 넓은 곳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복잡복잡해 보여서 답답하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뒷배경까지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 그런 노력과 김선영이라는 나름의 관록을 지닌 배우의 무대였지만 엘리자벳 역의 김선영에겐 그 명성에 비해선 살짝 실망했다.
배우를 떠나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은 공감이 어렵다. 한 편의 뮤지컬에 소녀시절부터 결혼하여 아이의 어머니가 되고 남편과 갈등을 겪고 아들을 잃고 죽음에 이르는 한 사람의 일생을 펼쳐놓으려니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뮤지컬 자체에서 충분히 얻을 수 없는 점도 한 몫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의로 일국의 황후가 되어 아들도 외면하고 자신의 자유를 갈망하는 씨씨란 인물은...
씨씨가 태생적으로 보헤미안이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다지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은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루케니의 박은태, 그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독일 원판의 루케니에게서 받은 느낌이 강렬해서인지 박은태의 루케니는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루돌프는 한국의 루돌프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원판의 루돌프보다 더 연민이 느껴졌다.
오스트리아판 뮤지컬의 토트, 죽음 역의 카라마스 마테는 숫컷 냄새 폴폴 풍기는 힘이 넘치는 배우였다. 그래서 아직 소년같은 준수의 죽음 역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으나 기우였음을 확인하고 왔다. 준수의 죽음에서는 저승사자, 뱀파이어 등 죽음과 연관해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적절히 버무러져 느껴졌다. 마테의 숫컷 기운 넘치는 죽음과는 확연히 다른 그만의 죽음이었다. 거기다 마테의 뻣뻣한 움직임이 살짝 섞인 데어 레츠테 탄츠, 마지막 춤과는 비교가 안되는, 아이돌 스타의 장기를 십분 활용한 유연하면서 죽음에 어울리는 춤사위는 멋졌다. 전반적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나날이 진보하는 준수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아 그런데, 의상들 때문인지 배우들의 모습이 마치 대두짤의 그 모습같이 보였다. 나만 그런 것 같지 않던데, 공들인 노력이 그렇게 보여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