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문명전 이스탄불의 황제들 전시를 보고 왔다. 아직 6월인데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해 가는 길은 햇살이 너무 따뜻해 살짝 괴롭기까지 하다. 후끈한 태양아래서도 산들산들 화사하게 피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꽃들이 독하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역시 꽃이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꽃들의 환대를 받고 몇 걸음 더 들어가자 외쿡 아저씨들이 케밥과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이건 뭐지? 라는 궁금증은 매표소 근처의 매점에 이르러 이내 풀린다. 터키문명전 기념 터키 먹거리 판매인 것이지 그 케밥과 아이스크림은.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긴 장대에 아이스크림 콘을 달고 이벤트를 열어 주는 장면을 목격했으나 구매하는 아가씨 반응이 워낙 민숭민숭한 터라 흥이 급감했는지 금새 아이스크림을 건네고야 만다. 기끔은 좀 격하게 반응해 줘야 할 때들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 

 

태극기와 함께 펄럭이는 터키의 빨간 국기도 보인다. 아이 일디즈, 터키 국기의 별칭이고 달과 별이라는 뜻이라고 포털에 검색해 보면 주르룩 나온다.

 

 

전시든 공연이든 혹은 여행도 그렇고 기념품에 대한 열망을 심어 준다. 이번 전시는 살짝 비싼 감이 든다. 12000원.

전시장의 기념품들은 대체로 가격 대비 필요성을 따져볼 때 매우 비효율인지라 그냥 엽서 한장으로 기념품 욕구를 달랜다. 도록이 가장 기념이 되겠으나 엽서로 대체. 

파란색 엽서에 그려진 황금색 선들은 술탄 압뒬아지즈의 투그라이다. 투그라는 술탄의 서명을 말한다. 예전 이스탄불에서는 갈대로 글씨를 썼다고 한다, 갈대로 쓴 서체들은 전시장에서 꽤 구경할 수 있다.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란 참으로 재주가 좋은 존재임을 강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저 서명 한 번 쓰고 난 다음 다시 한 번 쓰려면 썼던 것을 보고 다시 쓰는 것은 당연하고, 쓸 때마다 헷갈릴 듯 싶다. 어쨌든 멋지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과 함께 이스탄불의 황제들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현수막에 새겨져 있는 것들은 전시장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현수막 하단에 빨간 줄은 아마도 양탄자일 듯, 양탄자는 마법을 걸어 타고 날라다니는 용도보다는 대체로 종교적 행위를 위해 사용되었던 듯이 보인다. 그런데 왜 자꾸 입가에 맴돌까 '두근두근 울렁울렁 ~~ 펼쳐라 펼쳐라 너의 모험담 불끈불끈 용기가 샘솟음 친다 ~~ '

 

 

아래 사진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탄불의 황제들은 5월 1일부터 전시를 시작했고 9월 2일까지 진행한다. 아이들에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전시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론 평일에 일정 시간만 아이들 출입을 허했으면 한다. 자녀교육하겠다는 엄마들과 그 엄마와 함께 한 아이들은 성인 관람객에게 방해 그 자체인 것이다.

 

 

 

" 아시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와 유럽의 동남쪽 끝에 위치한 이스탄불 지역은 신과 인간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온 땅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성을 쏟아 낼 수 밖에 없는 신비로운 자연환경, 그리고 수천 년의 세월동안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의 자취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터키이다. "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이 참 좋았다. 세계사를 통해 배우는 짧은 지식으로 유식해지는 느낌도 좋았고, 세상 곳곳의 옛날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좋았다. 어차피 역사란 옛날 이야기이지 않은가.

세계사에서 중세와 비잔틴이 유달 인상적이었다. 이스탄불을 매혹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예전에 에어호크라는 미국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자가 이스탄불로 스파이짓하러 갔다 죽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을 보고 이스탄불에는 은밀한 위험마저 도사린다며 매혹 더하기 신비의 도시라 생각했더랬다. 사람사는데 다 똑같다라는 생각에 해외여행에 큰 매력을 못느끼는 편이나 굳이 해외여행을 간다면 이스탄불에는 발도장 한 번 찍어보고 싶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팀 세버린의 바이킹 시리즈에서 만나는 콘스탄티노플로 시간여행도 멋질 것 같다. 위험할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전에 했던 바로크,로코코 궁정문화 전시와 이번 전시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문화란 결국 지방색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우열비교는 조심스럽지만 이스탄불의 황제들 유물들에 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신밧드의 모험을 통해 익히 보았던 터번, 술탄들이 쓴 터번 장식물들은 바로크, 로코코 궁정여인들의 장신구들보다 눈길이 갔다. 터번 장식품 뿐만이 아니라 투구나 칼, 코란, 향로 등등 섬세하고 뛰어난 세공솜씨 들이 돋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오스만 전사들의 반월도는 없었다. 술탄도 반월도가 있었을 터인데 아쉽다. 코란은 중세의 성경과 비하여 공력이 훨씬 좋아 보였다. 코란에 들인 정성에서 알라를 향한 신심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화려하고 값비싼 것들을 보면서 그 시절 술탄과 그 가족들이 누렸을 부귀영화가 좋았겠다는 생각보다는 결국 모든 것이 과거의 유물의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크게 가슴에 다가온다. 이런 마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묘비에서 아주 깔끔하게 마음에 박혀 버린다.

 

"온 세상을 차지해도 만족하지 못할 그에게 이제는 무덤하나면 충분하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무덤하나면 충분한 인생인 것이다. 화장하면 무덤조차 필요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생이란, 이런 것을 무상함이라 부르는 것일까.

 

박물관이 멋진 점 중의 하나는  백과사전, 지금은 인터넷에서 보던 인류의 유산들을, 비록 유리가 가로막고 있지만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특히나 사진으로 볼 때 가늠할 수 없었던 크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나름 재미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카데쉬 조약이 새겨진 점토판이였다. 당시의 외교언어였다는 아카드어로 새겨진 카데쉬 조약은 최초의 평화조약이다. 아카드어라는 것도 신기하고 점토판의 크기에도 놀라고,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을 들여다 본 다는 사실도 근사하고..

 

터키하면 커피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터키의 커피문화 소개가 있었다. 커피문화를 소개하는 구획 벽에 써진 터키 속담은 전시장 벽마다 쓰여 있는 글들 중 백미라 하고 싶다.

 

"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고,

죽음처럼 강해야 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

 

달달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것이 정답이라 믿을 것이다. 남들이 나의 커피 개취를 납득하지 못할 지라도 앞으로도 나는 달콤한 아메리카노를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