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마지막 수요일, 수 만년 만에 대학로에 갔다 뮤지컬 보러,
영상으로만 뮤지컬을 보던 자가 생으로 뮤지컬을 본다는 사실에 작은 설렘을 안고 출발했으나 추위와 어둠과 싸우며 골목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극장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계획과 달리 주린 배도 채우지 못하고 콧물 줄줄 흘리며 찾아간 극장, 늦었지만 다행히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자고로 남녀상열지사만큼 국적불문, 세대초월하여 사랑받는 주제는 없을 듯....
작금의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는 시청률 바닥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시작은 거창하게 청춘의 고뇌나 아니면 특정 직업세계를 그리겠다는 각오를 보이지만 보다보면 사랑에 허우적거리는 드라마가 허다하다
노래는 어떤가, 100의 99은 사랑을 노래한다.
사랑 노래가 대세임을 비난하려함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일뿐.....
어쨌든 시크릿가든이, 김주원, 현빈이 추위와 함께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지금, 공연 관람기를 작성해 보고자 한다.


내가 본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는 12년 동안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연극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송시현이 작곡하고 김정리가 음악감독을 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엮었다.
다섯개 에피소드의 배경은 같다, 모두 여관방이다, 여관방에서 일어나는 세대별, 유형별 사랑이야기

첫번째 에피소드 노총각 노처녀, 결혼 못한게 아니라 안했다
두번째 에피소드 전라도 부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세번째 에피소드 아내의 생일 한국판 사랑과영혼
네번째 에피소드 남자선배 여자후배 Love Start
다섯번째 에피소드 할아버지 할머니 아직도 내 마음은 이팔청춘

앗, 지금 보니 티켓 뒤에 빨간색 하트 뒤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이란 글귀가 있었구나. 그런데 여전히 난......
뮤지컬을 본 솔직한 감상은 재밌다, 그러나 깊은 여운은 없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노총각 노처녀 에피소드는 유쾌하다,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투닥거림이 귀엽다. 너희들만한 천생연분이 있으랴 싶다. 친근하고 익숙함 속에 있는 편안함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사랑, 흔하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다. 다만 여자배우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이 뭉쳐버려 들리지 않는 대사들이 몇 군데 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 남자 배우가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그 능청스러운 연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던 에피소드, 사랑이기 보단 정으로 산다는 그 유명한 말을 배우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고 본다. 그런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가 왜 이 에피소드에 따라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도 여자배우의 대사를 놓쳤다. 첫번째와 다른 배우였는데 첫 번째 배우와 마찬가지로 속사포처럼 쏟아낼 때 대사가 뭉개져 들렸다.

세번째 에피소드, 잘 생각해 보면 참 애잔한 에피소드이건만 이때 시장기와 지루함을 느꼈다. 죽음이란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대략 상상할 수 있기에 누군가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그 빈자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상상하면 정말 가슴저린 에피소드이건만 지루했다.

네번째 에피소드, 짝사랑하는 선배를 잡기 위해 만취해서 여관방에 가게 만들어 들이대는 여자후배....여자후배의 발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선배가 쏟아내는 대사들을 볼 때 그다지 호감형도 아니건만 왜 저런 방식으로라는 의문이 들었다. 얘들이 이 여관방을 나가서 과연 이 연애를 지속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공감할 수 없었다. 거기다 진부하다. 

다섯번째 에피소드, 할머니와 할아버지, 애틋한 기억을 갖고 살아온 오랜 세월, 그 숱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이 고와 보이는 에피소드. 전라도 부부를 연기했던 두 배우가 다시 연기하는데 여자배우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를 검색해 보다 연극과 기억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 책의 저자는 이 뮤지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하고 있었다. 

다시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는 연극의 문제를 곱씹어야 겠다. 위성신이 쓰고 연출한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가 내게는 "사랑에 관한 2인극 페스티벌",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과 같은 표어는 공연하는 소극장보다 크고, 공연의 내용은 진부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작품의 무대는 여관방이고, 커다란 무대 소품은 한가운데 놓여 있는 침대이다. 두 개의 문을 통해서 처음 마나는 두 젊은 남녀, 부부, 사랑하는 노인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그 사이, 그러니까 침대 위에 우리가 많이 본 이야기들이 아주 쉽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극은 현실을 다루되 다르게, 모델인 현실을 더 탁월하게 그려내야 하는 것 아닌가! 공연은 현실이 아니지 않는가. 공연 속에서만 현실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을 말하는 연출가의 시선이 여관방 몰래카메라와 같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 이르면 더 고통스럽다.

상당히 혹평이다. 사실 극장 안에 들어갔는데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침대가 뜨악하게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수하는 극이다 이 뮤지컬, 그다지 큰 여운은 없었지만 추상적이지 않고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을 것 같은 이야기였고, 살아낸다는 육중한 무게에 짓눌려사는 생활인들에게 부담없이 다가올 수 있는 극이여서 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수의 비결을, 만약 진중하고 여운과 진한 감동을 원하는 이들은 보지 않으면 될 것 같다.

I love just way you are.
엘튼 죤의 노래를 듣다 어느날 꽂힌 가사이다, 그날 이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 최상이라 여기고 있다, 온 땅에 충만한 연애를 사모하는 마음들이 자신의 자신됨에 행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내길 바란다. 그리고 뮤지컬에 끼워넣고 싶은 따뜻하고 알흠다운 사랑의 유형들이 많이 생성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