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여행지로 한국 여행책자 등을 참고하면 '프랑스조계지'는 필수 코스인양 등장한다. 그런데 '프랑스조계지'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것 같다. 동행인 캐나다 청년도 french concession을 신선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참고로 그 캐나다 청년은 중국에서 10대를 보내고 현재 중국대학에 다닌다. 파란눈의 백인이 뱉어내는 중국어 덕을 보게 했던 청년이여 잘 성장해다오~~~. 그리고 중국인들에겐 '프랑스 조계지'라는 말 자체가 불경스러울 것 같아 행인들에겐 말도 안붙혔다.

 

프랑스조계지는 여러 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데, 버스로 이동하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 아리송하여 결국 상해 거리에서 헤매고야 말았다. 그러나 어느 나라 대도시에 가도 볼 수 있을 만한 풍경과, 여기가 상해구나 싶은 풍경이 여행지에서 길을 못찾고 헤맴으로써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맛봤다.

 

상해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곳들에선 스타벅스를 못봤는데 헤매다 보니 스타벅스를 만났다. 스타벅스를 그닥 좋아하지 않건만 상해에서 헤맨 그날만큼은 너무나 반가웠다. 스타벅스에서 프라프치노를 사들고 나와 길을 걸으니 헤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조금 후미진 곳에선 중국의 근대사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풍취를 느낄 수도 있었다. 2차선 도로가에 즐비한 건물들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 타인의 일상을 구경하는 여행이 주는 맛을 음미하다 보니 프랑스 조계지로 의도치 않게 들어섰다.

 

확실히 다른 곳과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었지만 걷다보니 오래된 건물을 흉내낸 새 건물도 보였다. 새건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론 납득하지만, 어찌되었든 급작스럽게 프랑스조계지에 대한 흥미가 증발해 버렸다.

2014년 가을, CCTV 에서 후난루와 푸싱시루를 낙엽길로 정해 시민들에게 가을낭만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뉴스 링크 : http://kr.cntv.cn/2014/11/20/VIDE1416453840401222.shtml ). 뉴스에서 짧게 비춰주는 영상을 보면서 길을 잃어 헤맸지만 어쨌든 제대로 프랑스조계지를 밟았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의 두 발을 디뎠던 곳을 매체의 영상을 통해 보는 맛도 괜찮았다. 지난 여름이 고마웠다.

 

 

프랑스조계지를 벗어나자고 발길을 옮기다 보니 작은 샛길들이 눈을 끌었다. 상해라는 국제도시의 화려한 이면에서 살아내고 있는 상해시민들의 공간일 골목. 구름이 걸쳐 있는 빌딩보다 이 골목풍경이 오히려 마음에 담겼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풍경이 조금씩 변해가는 재미가 걷는 기쁨을 줬다. 걷는 동안 그야말로 빈티지한 다양한 문을 눈으로 보다가 결국은 직접 손으로 열고 들어가 때마침 할인 중인 작은 배낭을 하나 샀다. 낯선 곳에서 친절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례하지 않으면서 도시인 특유의 냉랭한 무심함을 뿜어내는 점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가게에서 쇼핑하는 것이 오히려 편안했다. 

 

이 가게 저 가게 구경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서울에선 이제 만나기 어려운 공중전화박스와 조우했다. 빨간 공중전화부스 위에 WiFi라는 파란글씨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디지털 세상임을 상기시켜 줬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가 걷던 저 공간도 와이파이 전파가 가득 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들을 뚫고 걷다보니 디지털 세대의 모던함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불상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런 불상은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인듯한데... 저 불상이 저 자리에 있던 이유가 궁금했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날씨가 조금 흐려서 한 여름이었지만 걷는 것이 많이 힘들진 않았다. 허나 시선을 돌리는 것도 카메라를 드는 것도 귀찮아진지 이미 오래였고, 도시 풍경에도 슬슬 질리기 시작한지 한참 후에 버스로 이동하고자 버스 정류장을 찾아 또 헤매었다.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무작정 상해 곳곳에 발도장을 많이도 뿌렸다. 난징루로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분명히 무단 복제했을 DVD 노점상이 있다. 갑작스레 돌아온 생기와 호기심으로 노점을 살펴보니 사랑하는 셜록의 DVD도 있고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최신 유행 '저작물'들이 잘 복제되어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그 버스를 타고 난징루로 출발. 상해에서 버스, 지하철, 택시, 도보 골고루 활용해봤다. 상해여행에서 가봐야 할 곳으로 지정된 유명관광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해 체험이었다.

 

난징루는 역시 북적북적하고 화려했다. 거대한 쇼핑거리가 품고 있는 자본주의 기운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쇼핑을 위해 난징루에 간 것이 아니었기에 대충 훓어보고 먹을 곳을 찾았다. 맛집을 찾아서 헤맴을 지속하고 싶지 않아 무작정 큰 건물로 들어갔다.

 

낯설지 않은 인테리어, 혹시 대만드라마나 중국드라마에서 나온 곳인가 싶었던 이곳에서 경양식 집에 들어갔다. 함박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등을 주문했는데 한번더 발품을 팔아 딤섬을 먹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의 파도를 타야했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잠시 쉼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둠이 내려 있었고 도시 곳곳에서 '전기쇼'가 시작되어 있었다. 상해의 여름 밤을 만끽할 수 있는 도보를 다시 시작했다. 그날 걸었던 상해의 기억의 반짝거림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