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남성 낙양에서 12킬로미터정도 떨어진 남쪽에 있는 용문석굴龍門石窟에서 중국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다. 만여개의 불상과 그 제자들의 상들이 동쪽과 서쪽의 향산과 용문산의 석회암 절벽에 새겨져 있다. 향산과 용문산 사이에 이강(Yi River)이 흐르고 있어 이궐(Yique 伊阙, "The Gate of the Yi River")라고 불렀다. 이궐의 다른 이름인 용문(Dragon's Gate Grottoes)은 한때 남쪽에서 낙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전형적인 중국 문탑으로 흐르는 이강을 보고 있는 두 언덕이 닯은데서 나왔다.

 

그 높이가 25mm에서 17m에 이르는 1400여개의 동굴에 10만여개의 상들이 있고, 또 거의 2500여개의 석비와 비문이 있어 한때 고대 석비의 숲이라 부르기도 했다. 불탑도 60여개가 넘게 있다. 

 

경치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용문석굴은 493년 북위왕조때 조영하기 시작했다. 30%가 북위 때 조영되었고, 60%가 당나라 때 조영되었다. 나머지 10% 정도는 여러 왕조에 걸쳐 조영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매표소 근처에 시뻘건 글씨로 용문석굴이라 새기고 그 옆에 파란 글씨로 세계문화유산이라 새겨 놓은 바윗덩어리가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념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매표소에 사진 속의 물건이 있었으나 설명 따위 ... 문맹인데다 더위에 지쳐 그저 희미하게 올라오는 물기운만 느끼고 나왔다. 뙤약볕 광장을 인내하고 이강 쪽으로 가면 그나마 살만하다.

 

용문석굴은 대륙의 규모라는 것에 대한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였다. 숨통을 조여오는 더위 속에서 강물이 전해주는 미풍은 용문석굴의 으뜸가는 미덕이었다고 생각한다.

 

강을 따라 서쪽을 쭈욱 훑어 올라가다가 동쪽으로 가서 쭈욱 훑어 내려오는 코스로 갔다. 2014년 용문석굴 입장료는 인민폐 120원이었다. 표 앞면은 용문석굴의 관람 루트와 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은 엽서다. 80마오짜리 우표가 인쇄되어 있다. 표 오른쪽 말단에 네개의 구획이 있다. 그 구획에는 서산석굴, 동산석굴, 향산사, 백원이란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데 네 곳에 입장할 때 표를 내밀면 된다. 표를 내밀면 해당 네모칸에 동글동글 구멍을 뚫어준다.

 

 

중국에 사람이 없으면 중국이 아니라고 중국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한 중국인이 말했다. 정말 어딜가든 바글바글하다. 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불상을 본다는 것은 보통 이상의 인내가 필요하다. 중국사람들은 작은 틈만 보여도 가차없이 매꿔버린다. 힘이 딸리면 밀리기 십상이다.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줄설때 앞사람과 공간을 조금 남기면 바로 세치기 당한다. 어쨌든 중국은 내수시장만 잘 꾸려도 먹고 살 것같다.

 

 

사람 수도 어마무시하지만 이 용문석굴이란 곳도 입이 벌어지는 곳이다. 사진 속의 벼랑과 사람의 크기를 비교해 보면 벼랑의 높이가 얼추 짐작될 것이다. 저 벼랑에 크고 작은 불상들이 빼곡히 박혀있다. 거기에 들인 공력을 상상해 보면 정말 대단한 불심이다. 그런데 이곳의 불상들도 머리가 없는 것이 많다. 일부러 한 행위임이 분명한 절단면을 보면서 복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용문석굴에도 관광열차가 있다. 향산쪽에 다니는데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자전거 대여비는 대단한 폭리를 취하고 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더위를 견디며 혹사시킨 다리를 예쁘게 핀 노란 수련 옆에서 잠시 쉬었다.

 

이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서쪽과 동쪽을 응시해 보면 이 불상의 집합소에 대한 상념들이 어지럽게 몰려 온다. 크고 작은 동굴에 맞게 다양한 크기의 불상들은 인간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어떤 대만 사람의 페이스북에 있는 글에서 석가는 나는 너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스스로 너를 비우고 또 비우라,고 했다. 사람들은 동굴을 파고 불상을 새기면서 자신을 비우고 비우면서 모든 번뇌를 날려 버렸을까? 작업하면서 비움의 해탈을 했을 그들의 작품의 목을 복으로 자신을 채우겠다는 욕망을 품은 어떤 이들이 잘라간다.... 인간세상은 요지경을 넘어 아수라장인 것인가 보다.

 

 

백원은 향산에 조성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묘이다. 중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나무도 많아 용문석굴에서 가장 있을 만한 곳이었다.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이 있었으니

7월 7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