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南京, Nanjing)은 중국 동부에 위치한 강소성(장쑤성)의 성도이다. 몇 시대에 걸쳐 중국의 수도였던 남경은 '남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중국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3세기 이후 여섯 왕조의 수도였던 남경은 북경, 낙양, 장안(서안)과 함께 중국4대고도이다. 그래서 남경은 중국 전역의 지식인들을 끌어들이는 문화의 중심이였다.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양자강(양쯔강) 하류에 위치한 남경은 장강삼각주 경제지역에 속해 있기도 하다. 2014년 유스올림픽 Youth Olympic 개최지였던 남경은 중국 동부지역에서 상해에 이어 두번째로 큰 상업중심이기도 하다.

 

문화, 경제적으로 중국 내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는 남경에는 왕조시대와 중화민국시대의 잔재들이 있다. 그중에서 손문의 능인 중산릉은 남경의 핫플레이스이다. 그를 뒷받침하듯 남경여행후기를 남긴 블로그들을 돌아보면 중산릉 방문 후기가 압도적이다.

 

중산릉中山陵의 주인공 손문은 중국인들에겐 손중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것 같다. 손문, 즉 쑨원이라고 말하면 누구인지 몰라 머뭇거리는 듯 보였다.

 

중산릉은 1926년 1월에 착공하여 1929년 봄에 완공된 손문의 무덤으로 자금산의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손문은 1911년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을 세운 '근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중국대륙과 대만 양쪽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중산릉의 규모는 어마무시하다. 중산릉원에는 관광 열차가 왕래하고 있으니 중산릉에 가는 분들은 관광 열차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손문의 석관은 볼 수없지만 동상은 볼 수 있는 그곳까지 가려면 39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한 여름 뙤약볕 열기를 잔뜩 머금은 계단을 오르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국인이라면 꼭 가서 참배할 곳이라 하지만 외국인이라면 꼭 가서 참배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중산릉은 이율배반적인 장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능원문에도 걸려있는 네글자 천화위공天下为公,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설파했던 그의 능원 규모는 서안의 병마용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중산릉 견학이 나쁘기만 하진 않았다. 중산릉에 진입하는 도로는 양쪽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어서 여름 더위 속에서 만난 물없는 오아시스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고, 비지땀을 흘리며 392계단을 다 오른 후 뒤돌아 보니 남경 시내가 굽어보여 땀흘린 보람이 있었다.

 

중산릉은 입장료가 없다. 과거에는 입장료가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관광차는 인민폐 5원 정도 한다. 남경기차역에서 중산릉까지 택시를 타면 인민폐 23원에서 30원 정도가 나온다. 어떤 기사를 만나느냐가 택시비의 관건인 듯 하다.

 

중산릉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관광 열차에서 내려서도 좀 걸어야 하므로 관광 열차에서 내려서 지하철역이 금세 보이지 않는다고 당황하지 말고 사람들 따라서 여유롭게 걷기를 즐기시길 바란다. 중산릉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방문했다.

 

기념관 앞에 세워진 동상에서부터 비장한 기운이 느껴졌다. 뜨거운 햇살아래 달궈진 동상이지만, 죽은 아이를 들고 절규하는 여인상은 서늘한 기운이 뿜어냈다. 정면에서 동상을 찍을 생각이었으나 사진찍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위의 사진 한장을 찍은 이후로 남경대학살기념관에서 더 이상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학살당한 해골이 발견된 장소에 세워진 기념관 내부를 도는데 숨이 막혀왔다. 결국 기념관의 앞부분을 조금 들여다보다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기념관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불을 지피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사실 자체만을 보여줘도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천인공로할 일들에 식겁할 지경인데, 기념관의 분위기는 머리가 아팠다.

 

한편으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유린도 남경대학살에 뒤지지 않는데 남경대학살기념관의 그것들이 우리의 고통을 가볍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하며 불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터인데....

 

남경대학살기념관 가까이 있는 직물박물관이나 갈걸 괜히 왔다는 후회만 남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 포스팅을 하면서 일본 위키피디아를 방문해 보았다. 일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그들은 대학살 그것을 '남경사건'이라고 표현해 놓왔다. 내용을 공들여 읽고 싶은 기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일본, 그들의 역사인식은 역시나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