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세들라체크 지음

북하이브 펴냄

 

 

사전 정보 없이 골라 읽은 책이다. 사실 '길가메시에서 월스트리트까지 성장과 탐욕의 역사'란 묵구에 낚였다. 낚이긴 했지만 두툼한 분량이 부담스러워 살짝 망설임이 있었으나 좋은 만남이었다.

 

세들라체크, 이 낯선 이름...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책날개에 기재된 저자 소개를 훑어보니 세상에나 이 저자, 스물 넷의 나이에 대통령 경제자문으로 발탁된 수재다!! 체코라는 국가명은 익히 알고 있지만 프라하와 밀란 쿤데라 외엔 낯설기만한 나라, 그 나라의 수재가 말하는 경제학은 어떤 것일지 구미가 더 당겼다.

 

부제에 적힌 대로 저자는 길가메시에서 시작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를 짚어가며 경제를 말하는데 길가메시란 것이 존재하는 줄만 알지 그 내용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지금도 없는 독자로서 이건 뭐, 신선하다 못해 낯설다. 그렇다 해도 책을 읽는데 장애가 있진 않다. 쉽지 않은 내용이긴 하지만 읽기가 어렵지 않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읽는 정도의 난이도로 생각된다.   

 

책을 읽다보니 숫자없는 경제학(차현진 지음)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 저자는 숫자없이도 경제학을 소개할 수 있다 했는데 이 책에서도 숫자없이 서양고전과 성경, 영화, 아퀴나스, 데카르트로 경제학을 말한다. 책의 분량이 보여주는 저자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독서 내공이 상당하다. 경제학자라고 경제학 책만 붙들고 산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했고 성경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해박함을 알 수 있다.

 

깊고 넓은 독서 내공을 바탕으로 문학, 영화, 성경을 빌어 경제를 말하는 것까진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아퀴나스와 데카르트가 경제학을 설명하는 독본이 되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경제쪽으로 아는 바가 없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퀴나스와 데카르트가 경제독본으로 이용된다는 점, 인상적이었다. 데카르트보다는 아퀴나스 쪽이 더 그러했다. 그러나 이익과 함께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선 어쩌면 윤리와 철학을 곱씹으며 경제를 말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저자는 책 전반에서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데, 원죄의 설명이 재미있다. 원죄는 소비의 죄이다. 아담과 이브는 사실상 그들에게 소비할 자격도 필요도 없는 대상을 소비했으며, 그 소비는 죄책감과 연결된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의 소비의 죄로 인해 원래 즐거운 것이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기쁨을 주는 소명이어야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밥벌이의 피곤함과 지겨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세상은 발전하고 성장했다. 그 원동력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런데 그 '욕망'이란 단어 자체에서 받는 느낌은 어둠에 가깝다. 슬라보예 지젝은 욕망의 존재 이유는 목표를 달성하거나 충분한 만족을 찾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의 번식에 있다고 한다. 욕망, 혹은 욕구는 발전과 성장이란 열매를 내는 동시에 독도 같이 뿜어낸다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새롭게 충족된 모든 욕구는 새로운 욕구를 낳으며 우리는 계속해서 뭔가를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취하는 모든 새로운 욕망을 조심하라. 그것은 새로운 중독이다. 소비는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

 

연말연시가 되면 새해의 동향을 예측한다. 그 예측 속엔 어떤 물건들의 등장과 영향도 포함되어 있다. 스마트폰 역시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에 그러한 새해 예측 속에서 제시되어 우리의 소비와 생활을 바꿀 것이라는 대대적 홍보가 있었다. 이런 예측들을 접하다 보면 저 예측의 근거는 무엇이라는 질문과 함께 힘센 기업들에 대한 의혹을 갖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수재인 저자가 책에 써놓은 다음의 구절을 보고 나름 정리를 했다.

 

우리의 욕망은 인위적이며, 우리는 어떻게 욕망할지를 배워야만 하고 무엇을 욕망할지 제시받아야만 한다. 이야기와 영화와 광고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상도 이런 과정의 도구가 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전문화의 정의다. 전문화란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말은 의사, 변호사 등이 전문화의 대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타쿠도 전문화 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성장과 진보는 당연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내준다. 정규교육을 마치고 학생딱지를 떼고 세상살이를 하다보니 어느날 문득 왜 진보해야 하는 것이지라는 피곤에 쩐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었다. 우리가 말한는 진보란 삶이 진행되는 내가 속한 세상이라는 매트릭스에 갇혀 거기에서만 듣고 보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 보면 희년제도가 나온다. 희년제도는 개개인의 능력, 배경 등의 차가 빚어낸 부의 편재를 한번씩 털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상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하나님은 이 제도를 실행하라고 했지만 단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인간의 끝을 모를 욕구와 과욕, 더 나아가 탐욕이 불행의 덫으로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을 것이다. 선의 극대화없이 이익의 극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설파하는 이 책, 선하고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특히 잘 사는 세상만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다.

 

상식적인 개인이 원하는 주된 사항은 그가 가진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더 많고 더 나은 욕구이다.

 

 

선악의 경제학
토마스 세들라체크 저/김찬별 역/노은아 역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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