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편의 중국 사극을 보았습니다. 심궁비사. 오프닝에 뜨는 글씨는 심궁비사가 아니라 심궁첩영이더군요. 심궁첩영의 첩은 스파이를 뜻하는 글자이더군요. 37회의 심궁비사를 본 소감은 궁중미스터리도 아니고, '첩'이 첩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한 사극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단격격이 황태후와 술 마시고 취해서 어찌어찌 황제의 침소로 들어갔고, 출궁했다 돌아 온 황제 역시 취해서 자기 침소에 있는 이단격격을 범하지요. 잠에서 깨어난 이단격격은 벌거숭이 황제가 옆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치듯 황제의 침소를 벗어나 집에 돌아가 서럽게 서럽게 웁니다.

 

이단격격은 열친왕과 약혼하였으나 파혼을 선언하고 어찌어찌 열친왕과 화해했으나, 이단의 임신사실에 노발대발하는 아버지 정친왕 몰래 왕부를 떠나서 한 절에 숨어 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황제와 원나잇으로 생긴 아이를 낳지만 복면을 한 누군가가 이단이 머무는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달려 들어와 이단을 목졸라 죽입니다. 와우....

 

이단은 쌍둥이를 낳아요. 그 중 한 아이만 몸종이 데리고 도망쳐서 간신히 살고, 몸종은 그 아이를 자기를 살려준 부부에게 부탁하고 죽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가 자랍니다. 엄마랑 똑같이 생긴 그 딸래미는 자수 장인으로 궁중 옷방에 들어갑니다. 그 이후 숱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결국엔 해피엔딩을 합니다.

 

입궁하기 전에 저잣거리에서 죽고 못살게 될 연인, 격태패륵을 만나지요. 서로 마주 걸어오다 어깨를 부딪고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날리고 뭐 이렇게 말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어깨를 부딪쳤으니 보통 인연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단격격의 생존 딸래미이자, 자수 궁녀 함향은 본디 이단격격의 몸종이었던 동사고 때문에 자신이 이단격격의 딸임을 알게 됩니다. 금새 황제, 황태후에게도 발견됩니다. 세상에 이단격격과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다니 다들 놀라지요.

 

중국 사극의 특징은 선악의 대비가 극히 극명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궁중사극의 경우, 등장 여인들의 선악은 극과 극을 달립니다. 심궁비사, 심궁첩영도 예외는 아닙니다.

 

황실의 옷가지를 담당하는 사의고에 함향과 같이 들어 온 수녀 냉설안, 그리고 태자비가 심궁비사의 악의 축입니다. 함향을 못잡아 먹어 안달난 냉설안은 태자비의 꼬봉이 됩니다. 꼬봉짓을 하다가 동사고, 함향, 함향을 길러 준 부모의 대화를 엿듣고 함향이 이단격격의 딸임을 알지만 태자비에겐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죠. 앞으로 냉설안으로 인해 어떤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복선'이었던 거죠.

 

중국 사극에서 보면 청력과 시력이 보통이 아닌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멀리서도 너무 잘 듣고 잘 보는데다 심지어는 투시해서 보는 것 같은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떻게 저걸 못보고 못듣고 못알아채는 것인지 저들의 청력과 시력은 정녕 저리 저질들인가 싶은 이들이 있지요.

 

여튼 이단격격이 남긴 옥도장과 옥나비 중 옥도장을 냉설안이 훔쳐가고, 그로 인해 냉설안은 격격이 됩니다. 황제도 이단격격과 보낸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손바닥에 찍혀 있었던 문양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요. 황제는 아침에 세수를 안했는지, 아니면 누가 세수만 시켜주고 손은 안닦아 주었는지 손바닥에 묻은 인주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더군요.

 

그래서 전지적 입장에 있는 시청자는 이미 이단격격과 황제의 하룻밤을 알고 있고,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음도 알고 있지만, 극 중의 인물들은 서서히 흐릿했던 사실들을 명확히 이해해 갑니다.

 

그러나 공주 책봉 전에 품위는 없고 권세만 누리는 가짜 설안이 이단격격을 죽였던 복면흑색옷에게 죽습니다. 복면흑색옷도 사실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으나, 드라마에서는 완전 미궁 속의 인물이지요.

 

어찌어찌 되어 함향은 저잣거리에서 만났던 격태패륵과 함께 이단격격 살인범 수사에 나서고 결국엔 범인을 잡지요. 그 사이에 태자비의 꼼수로 함향은 설안의 살인범으로 몰리고 그로 인해서 오히려 사건을 해결하는데 한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결국엔 범인도 잡고, 함향은 공주가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전개도 나름 빠르고 아주 황당무계하지도 않지만 '궁중미스터리'를 담뿍 즐길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중국 사극에서 친자 확인 방법으로 물에 피를 떨어뜨립니다. 두 사람의 피가 흩어지지 않고 같이 뭉치면 혈육이고 뭐 그런 것 같은데요. 여러 군데서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예전에 중국에서 이런 방법을 썼다는 기록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학적인 소견이 궁금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궁금한 점은 정가영입니다. 정가영은 보보경심에서 팔황자로 등장해서 마이태약희의 마음을 흔들었지요. 심궁비사에서는 격태패륵입니다. 극중의 두 형보다 늙어보이는 이분, 정가영은 꽤 인기인인 것 같습니다만. 곰곰히 살펴보아도 이분의 호감 포인트를 찾질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