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폴 영 저/한은경 역 | 세계사 | 원제 : The Shack
“당신은 어디 계신가요?” |
입에서 입으로 이 책이 좋더라 하며 회자되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후기를 남겼다는 것을 책표지를 검색하면서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사람에겐 '때'가 있다. 책도 그렇다. 이 책을 몇 주 전, 아니 2주 전에만 읽었더라도 또 하나의 진부한 책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1주 전 오랫동안 알고 왔던 사실이 깨달음으로 마음을 파고들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은 이후에 접하게 된터라 진지하게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엔 기독교인들이 많다. 소위 '예수쟁이' 혹은 요샛말로 '개독인'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그들은 대체로 세상의 소금과 빛은 커녕 어둠을 짙게 하는데 일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개독'이라 불리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현재의 기독교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보면 기독교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만행들이 많다. 십자군 전쟁도 그렇고 교회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들이 인간사를 어지럽혔다.
맥은 비바람치는 날 우편함에서 '파파'의 이름으로 온 쪽지를 보고 딸아이가 살해되었던 오두막을 찾는다. 거기서 자신을 '파파'라고 하는 흑인 여자를 만난다. 하나님이 간달프처럼 흰수염을 늘어뜨린 근엄한 나이든 백인 남자가 아니라 흑인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부터 맥은 당황스럽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는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아무리 읽어도 당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믿을 수 있다 생각했다. 나의 상상 안에 다 들어오는 신이라면 그 신은 한계를 갖고 있을 테니까.
인간은 자신들의 '매트릭스' 안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정의한다. 결국 하나님은 한정된 신이 되고, 인간들은 자신들의 체계와 규범 속에서 아닌 척하지만 종국엔 자신들이 신을 대신하며 살았다. 인간사에서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악은 그래서 빚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포인트는 네오가 유연성을 자랑하며 허리를 꺾어 총알을 피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지금껏 선악과를 비롯하여 이러쿵 저러쿵 한 것들은 내가 갖고 있는 작고 작은 매트릭스 안에서 지지고 볶았던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 불합리해 보이고 따지고 들것이 많았던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딸의 살해범 용서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라사대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너도 용서해라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지만 용서의 당위성을 제시해 주었고 그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용서하겠다는 결단을 하자마자 눈녹듯이 지금까지의 분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엔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해 준다는 점에서 위로와 안심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알고 있던 것들은 알고 있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이 나의 종교로서 내 삶의 많은 이슈 중의 하나로서 존재할 때 나는 계속해서 기독이 개독으로 불리는데 일조하는 인간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 줬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아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낸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다. 더불어 이 책이 나에게 던져진 핵심어는 매트릭스, 통제 였다. 어느 시기에 다시 읽는 다면 이 핵심어들이 아닌 다른 핵심어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뽑은 이 핵심어를 가지고 사유라는 것을 해봐야 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상과 체제를 넘어서 존재하는 분이다. 그 안에 갇혀 버린 신은 그냥 우리가 만들어낸 신일뿐이다. 그런 신이라면 무신론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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