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아이한테 도화지를 주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뭐든 그린다. 하지만 어른들은 덮어놓고 "저는 그림을 못 그리는데요."하고 만다. 미리 스스로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맛있는 파리
진경수 지음
북하우스 펴냄


어른이란 자신의 가치 판단에 갇혀 버린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잘 못합니다라는 말은 겸양 속에 당신한테 평가받기 싫습니다라는 의향을 품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우열가리기 좋아하는 분위기에서는 머리가 커질수록 움츠러 들고 또 움츠러들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책 속의 한 구절을 보며 열린 마음과 제한하지 않기, 그것이 청춘의 마음일 것이야라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지만, 그 생각을 우리의 아픈 청춘과 중년들이 짠하다는 마음이 밀려와 덮쳐버린다.

우리 사회는 시작도 수정도 다 어렵다. 특히 수정에 대해선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말이 마치 불변의 진리인양 덤벼든다. 사방에 엄청난 벽들이 치솟아 올라 엄청난 기세로 길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시작이 그 어디보다 중요한데, '시작'으로 초조해진 청춘들은 단추를 잘못 끼곤 한다. 시작한다한들 잠깐의 기쁨은 시들고 행복이 무엇인가를 찾아헤맬 수 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는 비약이라 손가락질힐 수 있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미리 선긋기를 잘하는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이 나라의 경직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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