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관객상을 수상한 인도판 러브레터라는 런치박스, '인도'영화라는 사실만으로 흥겨운 음악과 춤이 가득한 발리우드식 로맨스 영화를 예상했다. 그러나 런치박스는 상영시간부터 일반적이었고, 발리우드식 음악과 춤도 없는 일반적인 영화였다. 하지만 그 여운은 길고 보통 이상이었다.

 

집에서 만든 도시락 혹은 식당에서 만든 도시락을 회사원들에게 배달하는 시스템, 영화 속 배달인에 따르면 영국여왕도 놀라고 하버드에서도 연구하러 왔다는 도시락 배달 시스템이라는 '인도'적인 소재에 녹여 낸 삶의 이야기는 달콤 쌉싸름했다.  

 

영화가 끝이 나고 클로징 자막이 올라오는데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이 자막이 다 올라가면 뭔가가 또 있어라고 하는 것만 같아, 그 뭔가를 기다리면서 자막의 행진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자막이 다 올라오자 영화는 완전히 끝났다.

 

자막을 뚫어져라 본 덕분에 이 영화가 선댄스 인스티튜트의 지원을 받은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멋지다 로버트 레드포드, 그 덕분에 멋진 영화를 한편 더 만났다.

 

 

사잔씨, 영화 내내 그는 말보다는 얼굴표정과 행동으로 많은 것을 보여줬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잔 씨의 표정은 애잔함 그 자체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얻은 '분별'이란 것은 포기를 종용하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 분별이 일라와 사잔씨 두 사람 안에 지펴진 설렘과 기대라는 불씨를 사그러뜨린다.

 

도시락 배달부들이 장악한 기차 안에 자리하고 앉은 사잔씨, 영 생뚱맞아 보이지만 그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잔씨는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결말이 해피엔딩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사잔씨의 이웃은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난을 돌린다. 사잔씨는 담배를 피우며 그렇게 식사하는 이웃을 보고 서 있다. 상처한 사진씨의 저녁식사는 소파에 앉아 조촐하게, 가족 간 대화 대신에 책을 펼쳐들고 이루어진다. 그리고 여주인공 일라는 딸과 남편과 끼니를 함께 하지만, 그저 말없이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함께 밥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가 인간사에 부여하는 힘과 영향력을 꼽씹어 보지않을 수 없다.

 

사잔씨는 퇴근길에 그림을 산다. 다 똑같은 풍경을 담은 그림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똑같은 풍경 속에 담겨 있는 사람이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다른 그림들 속에서 사잔씨는 자기가 그려있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산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사잔씨가 일라에게 다른 사람의 것이 더 좋아보이는 법이라고 쓴 편지가 생각이 났다. 

 

그냥 멀리서 보면 도시의 삶은 다 같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도시라는 풍경을 배경으로 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도시 안의 삶은 저 사람 보다 이 사람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떨어져서 보면 모두가 엇비슷한 도시의 삶으로 뭉뚱그려질 수 있다.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라는 대사가 여운을 남긴다. 어딘가 어긋났고 잘못된 것이 있을지라도 결국에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내 생각과 다른 의미를 품은 대사일지라도 도시에 발붙이고 날마다 정신없이 사는 이들이 설혹 길을 잘못가더라도 종국엔 행복이란 목적지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낯설지 않은 이름 인도, 하지만 낯선 그 문화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런치박스는 괜찮은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그리고 괜찮은 인도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이가 생기면 이 영화를 추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