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은 중국의 8대 고대도시 중의 하나이다. 우리식으로는 開封으로 쓰나 간체자로는 开封이라 쓰고 카이펑이라 읽는다. 중국 하남성에 있는 현급 도시로 남송시절의 수도였다. 황화강 남부에 위치한 개봉은 대량, 변량 등 여섯 개의 이름이 있었다. 개봉은 진나라 때 등장한 이름으로 국경을 확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위나라 시절 대량이라 불렸던 개봉은 진나라에 위나라가 망하면서 함께 파괴되어 중간 규모의 장이 서는 곳이 되었고, 지금까지 개봉으로 남아있다.

 

송나라시절 개봉은 동경 또는 변경이라 불렸다. 당시 개봉은 중국의 수도 성곽 안팎에 400,000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었다.

 

1049년 우국사탑(佑國寺塔), 현재는 철탑(铁塔)이라 부르는 탑이 건설되었다. 높이 54.7미터인 철탑은 전쟁과 홍수 등을 견뎌내어 이 고대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랜드마크가 되었다.또 하나 남은 송대의 탑 번탑(繁塔)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11세기에 개봉은 그 정점에 이르렀었다. 네 개의 주요 운하의 교차점으로서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였다. 1013년에서 1127년 개봉이 세계 최대의 도시였을 것이다.

 

정강의 변이 일어났을 때 여진의 침입을 받는다. 이후 금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개봉은 황하강의 범람원에 위치하여 군사적으로 취약한 곳이었다. 개봉은 중국이 몽골 지배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여진의 지배를 받았다.

 

명왕조가 시작되면서 개봉은 하남지역의 수도가 된다. 이자성을 막기 위해 명나라 군대가 황하강의 물을 흘려 보내 도시는 다시 파괴된다. 청나라 강희황제때 재건되나 홍수 피해를 입고 다시 재건되고 이런 과정을 겪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도시이다.

 

개봉은 역에서부터 낡고 오래된 작은 도시라는 인상이었다. 고대의 흔적이 아닌 건물들은 어찌보면 누추해 보이는 개봉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찾으러 버스를 타고 개봉대학을 지나 성곽 바깥으로 나갔다. 성곽밖의 신시가지는 신도시의 면모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어렵게 찾은 KFC는 우리동네 KFC와는 비교가 안되게 좋았다. 그리고 KFC를 매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회적이고 쉬크해 보였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그것을 향유하는 중국인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곽안에도 패스트푸드점은 있었으나 처음 가본 곳에서 말도 못하니 헤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헤매임으로 방문하기로 예정한 관광지에서 만날 수 없는 중국의 소도시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수확을 얻었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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