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열림원

지난 시간 유행처럼 불어온 인문학의 바람 탓일까? 옛집을 '철학'으로 읽어낸다는 제목이 두둥하고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한옥에 대한 책 두어 권을 읽어보거나, TV에서 방영하는 한옥 관련 방송들을 보면 우리 옛집은 자연을 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양반집에선 사랑채 앞에 배롱나무를 비롯 몇몇 나무를 즐겨 심었는데 그것은 선비정신과 관련있다는 식의 정보를 얻게 된다. 이러한 얕은 지식으로 옛집, 즉 양반들의 집에는 자연주의와 유교가 적당히 섞여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나름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대한 믿음을 많이 갖고 있던터라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는 저자가 그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읽어낸 옛집에 담긴 철학을 보고 나의 '정리'의 깊이를 더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을 채우기에 이 책은 부족함이 없는, 오히려 차고 넘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책 한권을 써내기 위해 고생하지 않는 작가는 없을 터이나,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섭렵해야 했던 정보의 양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통섭'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책에도 건축, 역사, 풍수지리 등이 '통섭'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한옥에 대한 책들보다 이 책에는 역사적 사실을 많이 담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고택들에 담긴 주인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행적을 살펴봐야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주인과 얽힌 역사들을 읽으며 그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인간의 끝모를 욕망으로 인한 자의적 타의적 인생의 부침이 새해가 시작된지 얼마안된 시점에서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은 사실 읽어내기가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삼백여 쪽에 달하는 지면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기억할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정보의 양이 상당하다. 풍수를 비롯하여 유교의 기본개념에 대한 배경지식없는 상태에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말그대로 글자만 '읽고' 넘어가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관련 배경지식이 없다고 책을 못 읽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알고 있더라면 책을 더 잘 흡수하고 저자의 이러저러한 이야기에 고개도 끄덕여보고 미간을 찌푸려 볼 수도 있을 터이다. 이런 생각에 살짝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은 표지나 내지 모두 광도 총천연 빛깔도 빠져 있다. 광도 색도 빠진 책을 보자니 불필요한 것들을 거둬내고 진정한 집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의무감은 금새 난감함이 되었다.  여기저기 우뚝 솟아있는 콘크리트 덩이들을 집삼아 살고 있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집에 담긴 철학은 돈의 철학이고 철저한 자본주의 사상이다. 인생이란 원래 녹록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현대의 집에 담긴 철학이란 것들은 삶을 더 헛헛하고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한 성찰과 그로 말미암는 진솔한 철학이 치열한 이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가치있게 하고 자신이 속한 세상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흔한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여행자의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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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함성호 저/유동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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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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