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에 갔더니 얼그레이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있어 주문해 보았다.

커피를 홍차로 희석한 맛이다. 커피맛이 얼그레이맛보다 세다. 이름에 얼그레이가 붙어 있으니 얼그레이가 들어갔나보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얼그레이아메리카노.

맛을 보고 고개를 들어 보니 벽에 It's Tealicious! 가 보인다. 가게를 나설 때 보니 간판에도 써있었다. 저 한줄이.

여튼 가게 안에서 Tealicious래~~라고 동행인에게 말을 건낼때 낯익은 선율이 들렸다. 김광진의 편지.

그 노래를 들으려 연두색으로 김광진이 새겨진 CD를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담담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소, ~오로 고하는 이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종종 듣는 이 노래를 아이돌들의 노래사이에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감정이 절제된 듯한 가사와 곡의 분위기가 오히려 슬픔을 촉촉히 내리게 한다.

 

스마트폰에 이 노래를 저장하고, 혹시라도 비오는날 버스를 타서 자리에 앉게 되면 이 노래를 들으며 비에 젖는 세상을 바라봐 줘야 겠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후렴)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 가오
 

이 노래를 찾으러 유투브에 가니 성시경군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김광진의 편지를 부르는 영상이 있었다. 거의 원곡과 다르지 않는 그의 노래, 하지만 성시경과 김광진여서 다른 편지.

 

 

노래가 흐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만, 김광진의 노래가 감정을 꼭꼭 다져가며 이별을 고하는 비장함이 있는 반면 성시경의 편지에선 그런 비장함은 없다.

 

 

김광진의 편지가 토토가 즈음이라면 어니언스의 편지는 쎄시봉 즈음일터. 김광진의 편지를 말하자니 어니언스의 편지가 생각나고, 이어서 최진실이 출연했던 영화 편지가 떠오르고, 그 영화 속의 시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가 떠오른다. 이런 것을 스키마라고 부르지, 아마도.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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