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6.25입니다.
예전엔 6.25날이 되면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이라는 노래가 비장하게 울려 퍼졌었다. 요새는 못 들어 본 것 같다. 그늘버섯꽃도 전쟁세대가 아니지만 그래도 6.25가 뭔 날인지는 안다. 그런데 요새 어린 친구들은 6.25나 3.1절 등등이 무엇인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다는 뉴스를 종종 본다. 그러나 어린 친구들, 영특하니 탄식 따위는 하지 않겠다. 다만, 오랜만에 6.25노래를 다같이 감상할 수 있길 바란다.
본 블로그에 단동항미원조기념탑에 대하여 포스팅했었다. (포스팅을 보기 원하시는 분은 http://xianu.tistory.com/944를 클릭해 주세요.)
항미원조기념관 앞에 있는 기념탑에 대한 포스팅이었다. 오늘은 기념관에 대해서 포스팅해 보고자 한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가 자기들에 유리하게 혹은 정당화할 수 있도록 '팩트'를 적당히 이용한 기록이라는 의미로 새겨도 무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입장에 따라서 한가지 '팩트'에 대한 여러 관점을 내놓는다. 그 여러 관점이 어느 일방에서 보기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함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일본의 태도는 물론 중국의 여러 공정을 통한 역사왜곡을 겪으면서 충분히 느꼈다. 이미 발해는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의 역사로 기정사실인양 되었다.
6.25도 중국, 북한,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 명칭도 다르다. 중국은 항미원조, 북한은 조선인민해방전쟁, 우리는 625이다. 덧붙여 미국은 한국전쟁이라 부른다. 명칭, 입장이 다른만큼 그 의미 해석도 각각이다.
중국의 항미원조에 대한 입장은 콧웃음이 났다. 압록강 단교 위에 붙여 놓은 판넬에 조선사람들이 중국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설명에 들어가 있다. 항미원조기념관에서도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항미원조기념탑쪽에서 기념관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표석이다. 중국인민지원군 제13병단 지휘소가 있었던 자리를 기념하는 표석인 것 같다. 이곳은 단동의 유치원생과 학생들에겐 필수 방문 코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단동 필수 관광 코스처럼 보였다. 중국인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중국이 한반도를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갈 것 같았다.
기념관 안에는 당시의 사진과 관련 설명, 관련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념관 안 공기가 썩 좋지 않아 십분이 넘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거기다 중국어 설명이어서 자세하고 꼼꼼하게 보기는 어려웠다.
젊은 김일성의 모습이 보인다. 전시관 안팎에 625 당시에 중공군이 활용했던 탱크, 군용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명도 묵직해서 결코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은 아니었다, 항미원조기념과.
중국은 마트도 그렇지만 전시관도 한번 발을 들이면 끝까지 돌아야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전투별로 지도와 대략적인 설명이 있어 전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전쟁 자체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중공군 군제, 그때 당시의 군인들의 소소한 물건들도 전시하고 있다.
항미원조기념관에 대한 설명이 기념관 벽에 붙어있다. 사람이 지나니 않는 때를 기다리느라 상당한 시간을 썼던 기억이 난다. 굳이 기다렸던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중국 방문객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다.
무적항도, 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저 입구를 지나면 당시 전쟁 상황을 인형이나 모형 등으로 재현해 놓은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쟁 그 자체만이 아니라 전쟁 안의 소소한 일뿐 아니라 관련한 사진 등을 전시하고 있다. 마지막 사진에 모택동, 스탈린, 김일성 사진이 나란히 걸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들이 활동한 결과 속을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다는 점, 사진 속의 일들이 먼 옛날 우리가 모르는 아주 먼 곳 어드메의 일이 아니라 이땅에서 벌어졌던 일이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적항도안의 모습이다. 재현전시물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전시관을 만날 수 있는데, 마지막 흉상은 황계광, 중국식으로 황지광? 이라는 인물인데, 중국측에서 볼때 그는 항미원조전쟁에서 영웅인 것 같다. 학교에서도 저 인물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 같고,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인 것 같다.
위의 사진은 중국판 가미가제 군인의 모습이다. 다이나마이트 팩을 등에 짊어지고 적진, 즉 남한측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영웅적인 행위라는 의미로 전시되었겠지만 그저 섬찟하다. 요즘 자행되는 자살테러가 이들을 본 딴 것 같다.
위의 사진은 한강의 모습이 아니라 압록강의 모습이다. 중공군들이 귀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항미기념관 설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걸어 놓은 문구들, 어설프게 내용을 추측해 보아서인가? 어째 하나같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위의 그림은 중공군이 조선의 아이를 겨울강물에서 구해주는 모습을 담았다. 항미원조기념관에서 만난 중공군은 조선인민들에게 천사요 구세주였다.
중공군이 조선 소년을 구하는 '감동'의 그림 밑에 사진들은 중공군과 조선인들의 모습이다. 조선인들은 중공군을 사랑했다. 마지막은 젖먹이를 엎은 부녀자가 부상당한 중공군에게 뭔가 먹이는 모습이다.
바로 위 사진 속 흉상의 주인공은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이다. 모안영은 625때 죽었다.
단동의 관광지에서는 몇 푼 내고 한복을 대여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촌티 좔좔 흐르는 한복대여장사 역시 볼때마다 불편한 모습이었다. 조선족은 그들의 소수민족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봤고, 단동 여기저기서 느꼈기 때문이다. 조선족에 대한 재정의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요즘 중국은 민족 선택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 말은 혈통상 조선족이 아니어도 선택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될 것이다. 물론 사회적 차별이 있을 터이니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악용될 여지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항미원조기념관, 불편한 체험이었다. 역사라는 것이 지나온 일들의 단순한 기록이기만은 아니라는 현실을 절감했다. 6.25는 지금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기억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잊을 수는 없는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깊이 느끼게 했던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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